강희남의장서거12주기 추모기자회견 … 〈강희남애국정신계승!미군철거!보안법철폐!〉

5일 흰돌강희남기념사업회, 통일애국열사강희남범민련추모모임은 미대사관앞에서 강희남의장서거12주기 추모기자회견 <강희남애국정신계승!미군철거!보안법철폐!>를 열었다.

사회자는 <2009년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이명박을 내치자>는 의장님의 마지막 말씀은 오늘도 퇴색하지 않고 살아있는 우리 시대의 구호이며 투쟁의 기치다. 우리는 다시한번 강희남의장님의 뜻과 정신을 심장에 되새기며 더욱 힘찬 투쟁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민중민주당청년당원이 강희남의장의 약력을 소개했다.

우리사회연구소권오창이사장은 <90년대 엄혹한 시기에 우리민족은 단결해서 범민련노선을 세웠다. 남과북 해외 8천만 민족이 단결해서 외세를 몰아내야겠다는 그런 굳은 의지로 모였다. 그 투쟁과정속에서 강희남의장이 나왔다. 강희남의장은 굳은 선비정신으로 범민련을 주도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만약 범민련투쟁이 없었더라면 과연 6.15공동선언이 나올수 있었겠는가. 그런 역사적관점에서 봤을때 강희남의장은 반미투쟁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장군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문재인대통령과 조바이든미대통령이 회담을 했다. 미남동맹을 강화하자는것은 쿼드를 강화하자는것이며, 미사일사거리를 연장하자고 하는것은 한반도에서 사드기지를 강화하자는것이다. 또 60만 국군에게 코로나백신을 제공한다하는것은 바로 이땅에서 전쟁을 더 강화하자는 의미 밖에 없다. 문재인대통령은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민족은 남과 북 해외 강희남의장의 정신을 따라서 주남미군을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는 그날까지 투쟁해나가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심수후원회권오헌명예회장은 <오늘 우리는 강희남의장의 순절 12돌을 맞고있다. 교육자며 성직자였고 통일운동가면서 역사연구가로 명성을 떨쳤던 강희남의장의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 하다.>고 발언을 시작했다.

권오헌회장은 <강희남이장의장이 한생을 염원하고 실천해왔던 그 염원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민족은 외세에 의해서 부당하게 갈라졌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되고 동족상잔의 아픈 상처까지 겪어야 했다. 결국은 동족대결을 책동한 외세의 간섭이 오늘에 이르러서 극단을 이루고 있다. 갈라진 민족은 자주통일해야하고 외세와의 불평등한 예속동맹은 끊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강희남의장님이 평생을 염원하셨던 이상을 실현해야한다. 오늘 강희남의장 순절 12돌을 맞아 다시한번 이땅을 강점하는 침략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세상을 이뤄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이것이 강희남의장에 대한 우리의 추도이고 염원이며 그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다.>고 결의를 밝혔다.

평화협정운동본부이적상임대표는 <강희남의장은 썩어빠지고 분단된 이땅의 많은 민중들에게 사람의 삶이란 바로 이것이다라는것을 가르쳐줬다>고 발언했다.

또 <가짜가 판치고 미제가 판치는 이 세상을 깨끗이 쓸어내고 죽어서나 살아서나 해방예수의 정신을 그대로 실천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상준통일애국열사강희남범민련의장추모모임대표의 추모사<강희남애국정신 따라 반미자주와 민중민주를 향해 나아가자!>를 민중민주당부산시당위원장이 대독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 <강희남범민련정신으로 반미구국항전에 떨쳐나서자!>를 낭독한 후 <범민련찬가>를 힘차게 제창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흰돌 강희남 의장 약력

1920년 1월 13일 전북 김제 농가 강학용과 류성녀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1935년 초등학교 졸업 후 한문수학 및 독학의 길로 접어들다
1935년 정복님과 결혼 후 예수교에 입교하고 슬하에 3남 4녀를 두다
1947년 한국신학대 입학하다
1950년 익산에서 중학 교사로 부임
1952년 군산 영명 중학 교사로 전임
1955년 군산교회에서 목사로 안수받다
1959년 몇 교회들을 거쳐 전주 영생중고등학교 교감으로 부임
1963년 전주 성광교회를 비롯하여 난산교회 등 목회에 전념
1977년 난산교회 시무 중 박정희정권에 도전하다가 전주교도소에 투옥, 1980년 초에 출옥
1977년 9월 광주고법 첫 공판일에 윤보선 내외 등 1천여명의 방청객들이 방청하려했으나 재판을 연기, 이에 경찰 및 공안기관에 맞서 민중 난투극이 벌어져 부상자 속출
1979년 광주교도소 수감 당시 장남이 광주교도소로 이감을 와 대전으로 송치됨
1980년 초 대전에서 출옥
1983년 문익환 목사와 민통련을 창립하고 대의원총회 의장에 취임. 이 해에 아내와 사별
1983년 기독교농민회 이사장을 겸하여 4개년을 지내다
1987년 전북대 강연으로 2차 투옥되어 전두환의 호헌조치 반대 옥중단식투쟁에 들어가 40여일을 지내다. 그해 6월 민중항쟁으로 출옥하다
1988년 조성만 열사 장례위원장을 맡다
1990년 저서 『역사속의 실존』 을 출간
1991년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다. ‘령성과 해방’을 번역 출간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조문시도 사건으로 3차 투옥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취임(초대의장). 범민련 관계인사 29명과 함께 투옥 됨(4차 투옥)
1996년 저서 『민중주의』 출간
1999년 10차범민족통일대축전 추진본부 의장을 맡아 박창균통일선봉대장 등과 함께 성황리에 개최한 후 수배,
명동성당에서 4개월 동안 농성 투쟁 전개
2000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사임
2003년 <이라크파병저지 목포-서울 도보 민중행진단> 20일간 천리 도보행진
2003년 저서 『중국 동북3성을 가다 : 고대사소고』 출간
2004년 4월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 결성
2004년 독일 동포들 초청강연으로 유럽행을 떠나다
2005년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
이라크 파병 저지운동으로 목포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 시위를 강행
2005년 5월 미군추방투쟁공대위 결성
2005년 5월10일~7월17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철폐를 위해 동상 앞에서 69일 동안 투쟁
2006년 용산 양키기지 앞과 양키대사관 앞 양키추방 투쟁 54회 진행
2008년 저서 『정리된 상고사』출간
21세기코리아연구소 주최의 제1회 파리국제포럼 참석
2009년 6월 6일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남기는 말(유서)을 남기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 향년 89세
2009년 현 범민련남측본부 명예의장

[강희남의장님12주기추모사]
강희남애국정신 따라 반미자주와 민중민주를 향해 나아가자!

강희남의장님이 순국하신지 어느새 12년입니다. 어제날에 뵌 것처럼 선연하게 떠오르는 의장님의 모습에 눈앞에 흐려지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의장님은 반미자주와 조국통일을 위해 한생을 깨끗이 산 혁명가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인생관이자 인사관이라고 합니다. 생을 불꽃처럼 태우며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의장님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도 스스로를 반미자주와 조국통일의 제단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민족의 전도를 위해 모든 것을 다바친 의장님의 열렬한 투쟁정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 활화산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민족반역무리들은 양키들을 등에 업고 민족분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의장님의 유언을 따라 우리는 민중을 억압하는 희대의 파쇼악법 보안법(국가보안법)철폐와 민족반역무리청산을 위한 가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민중에게 희망을, 잠든 자에게 각성을, 반역자에게 공포를 안겨주던 의장님의 뇌성과 같은 외침과 과감한 투쟁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의장님의 굳은 신념을 가슴에 새기고 전진해야 할 때임을 절감합니다.

우리는 민족사적 대전환기에 살고 있습니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반제자주세력과 제국주의연합세력간의 대결은 2차세계대전을 능가하는 전세계적 범위에서의 대격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연합세력의 우두머리인 양키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위험천만한 북침핵전쟁연습을 벌이며 감히 우리민족을 절멸시키려 광분하고 있습니다. 부싯돌은 부딪힐수록 밝은 빛을 내며 결정적 시기가 다가올수록 정의와 부정의의 격돌은 첨예해집니다. 양키들과 양키를 등에 업은 민족반역세력과 기만적인 탈을 벗어던진 친미사대세력이 제아무리 핵전쟁위기와 민족분열을 획책하며 마지막 발악을 해도 결코 우리민중의 정의의 투쟁을 멈춰세울 수 없으며 부정의한 반민족세력, 반민중세력의 참패와 심판은 필연입니다.

강희남애국정신 따라 반미자주와 민중민주를 향해 한치의 흔들림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의장님의 정신은 범민련정신이자 민족자주정신입니다. 의장님께서는 비록 우리곁에 없지만 민족의 위인이자 숭고한 애국자이신 의장님의 열렬한 민족애와 철저한 투쟁의지는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심장속에 맥박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라는 의장님의 민중주의를 가슴 깊이 새기며 반드시 온민중을 구국의 반미항전에 불러일으켜 양키군을 추방하고 자주통일의 위업을 실현할 것입니다.

2021년 6월5일 이국만리에서통일애국열사강희남범민련의장추모모임대표 이상준

[추모기자회견결의문]
강희남범민련정신으로 반미구국항전에 떨쳐나서자!

민족사적 대전환기를 앞둔 오늘 강희남범민련의장의 영상이 더욱 사무치게 안겨온다.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며 마지막순간까지 민중중심의 사상적 원칙을 견지한 강희남의장의 신념은 조국통일의 역사를 전진시켜온 힘이며 투쟁의 원천이었다.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의 원흉인 미제를 몰아내기 위해 헌신분투했고 친미사대무리에 맞서 굴함없이 투쟁해온 한생이었다. 전두환반역무리에 맞선 40일 옥중단식투쟁과 김일성주석서거시 방북조문투쟁, 맥아더동상철거와 양키추방투쟁 등 오로지 민중과 민족을 위해 걸어온 한길이었다. 후대들이 영원한 의장님으로, <강희남정신>이라 부르며 그 숭고한 뜻과 열렬한 투쟁정신을 심장에 새기는 이유다.

우리는 서거12주기를 맞아 강희남정신이야말로 이시대 가장 절실한 투쟁정신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강희남의장의 마지막말씀은 오늘도 퇴색하지 않고 살아있는 우리 시대의 구호고 투쟁의 기치다. 박근혜를 단죄하고 이명박·박근혜를 구속시킨 우리민중의 힘은 전두환파쇼통치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강희남정신의 계승이다. 광주민중을 무참히 살육했던 학살자 전두환의 반인륜만행이 드러나고 여전히 그 정치적 후예인 국민당(국민의힘)반역무리의 사대매국망동이 민중의 생존권·발전권을 유린하고 있다. 우리는 민중항쟁만이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이뤄낼 유일한 방법이며 민중항쟁정신이자 강희남정신임을 실천적으로 입증해왔으며 변함없는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미제의 간악한 민족분열책동과 위험천만한 북침핵전쟁책동으로 코리아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처해있는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 강희남정신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해야 한다. 바이든<정부>는 대화와 외교를 운운하며 기만적인 여론몰이를 벌이는 한편 제국주의군사동맹을 강화해 쿼드뿐 아니라 나토핵심국까지 끌어들여 북침핵전쟁연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미남회담으로 문재인정권은 평화통일지향성마저 줴버리며 반북호전적 본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양키와 민족반역무리의 청산 없이는 조국의 자주적 통일도, 민중중심의 새사회건설도 불가하다는 것은 강희남의장이 앞장서서 벌였던 역사적인 투쟁으로 이미 확인된 실천적 진리다. 시대는 강희남정신, 범민련정신, 결사각오의 구국정신을 부르고 있다.

강희남정신, 범민련정신을 구현해 우리민중·민족주체의 새시대를 개척하는 것은 필연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4.27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 등 평화적 통일을 위한 남북간의 합의가 백지화되고 미남간의 예속관계가 심화되면서 이제는 반민주파쇼악법인 보안법을 앞세운 압수수색과 체포구속 사건이 연이어 자행되고 있다. 미제의 대북적대시정책이 고수되고 남의 반평화·반통일세력의 준동이 거세질수록 우리민중의 혁명적 자각은 가속화되며 우리민족의 통일지향열망도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강희남범민련정신으로 반드시 머지않은 장래에 민중주체의 새세상을 건설할 것이다. 모두 다 미제와 사대매국무리의 숨통을 끊어버릴 반미구국항전에 한사람이 떨쳐나서 조국의 자주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기자.

2021년 6월5일 서울광화문 미대사관앞
흰돌강희남기념사업회, 통일애국열사강희남범민련의장추모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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