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기관차-7] 강화되는 이란과 중동반제전선의 무장력

20세기초 영국인들이 이란에서 유전을 발견하면서 이란은 제국주의의 간섭과 침략을 받아 영국과 러시아의 분할지배를 당했다. 1차세계대전에서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주변국들의 전쟁터로 전락돼 엄청난 피해와 학살을 당했다. 2차세계대전에서도 독립국으로 역할하지못하고 연합국의 공격을 받아 그들에 협력하지않을수 없었다. 모사데크는 이란의 석유자원이 제국주의국가와 독점기업에 탈취당하는 현실을 인식하고 석유국유화운동을 벌였다. 1951 모사데크는 이란하원의 압도적지지로 총리에 취임했고 이란석유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하지만 석유독점자본의 압박에 이란경제는 타격을 받았고 여론이 악화됐다. 미국이 이란의 지원요청을 거부하자 모사데크는 소련에 접촉을 시도했고 이때 미CIA가 조종해 쿠데타가 일어났다. 모사데크는 체포되고 파흘라비국왕이 복귀했다. 이후 미국이 이란석유산업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게 됐다. 1979 반미반제의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된다. 한편, 미영제국주의자들은 중동에 유대교국가인 이스라엘을 건국하도록 했다. 아랍인들도 이땅에 통일된 아랍민족국가를 건설하고자했지만 실현되지못했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다. 유엔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를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유엔의 결정에 반해 정착촌을 건설하며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키웠다. 영국·프랑스는 이집트로부터 수에즈운하의 운영권을 탈취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이집트침공을 제안했다. 이렇게 시작된 2차중동전쟁은 유엔과 미국의 압박으로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물러나면서 종결됐는데 이스라엘은 전쟁의 대가로 프랑스에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핵탄두를 장착할수 있는 미사일과 핵폭격기·핵잠수함을 보유하고있다. 핵잠수함의 경우, 1991이라크전쟁에서 독일회사가 이라크의 화학무기개발을 지원한것이 드러나자 독일은 이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이스라엘에 잠수함2척을 기증했다. 이스라엘은 그외 2척을 더 구매했으며 건조비의 1/3은 독일정부가 부담한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공식상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된다. 이스라엘은 이처럼 핵무기보유에 열을 내는 한편, 다른 중동국가들의 핵보유는 악착같이 막아나서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을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화를 절대로 용인할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란도 이에 맞서 혁명수비대에 해외공작전담조직으로 <알쿠드스>를 조직해 활동하고있다. 솔레이마니가 이부대를 지휘하며 헤즈볼라·하마스, 이라크민병대등과 연계를 가져왔다.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자기땅에서 쫓겨나게 된 팔레스타인인들이 국경이 접한 레바논으로 이동하자 이스라엘은 이를 이유로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는 레바논민중들의 분노를 야기했고 헤즈볼라가 창설된 배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