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정권은 유엔임시위원단주관하에 진행된 남측만의 단독선거를 통해 수립됐다. 소련등 7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선거가 가능한 지역만이라도 총선을 하겠다는 입장을 강행했다. 김구는 2.7구국선언을 발표하고 김규식등과 함께 1948 4월연석회의에 참석했으며 이후 이합의의 관철을 위해 노력했으나 남만의 단독선거를 막지못했다. 그뒤로도 통일을 위해 애쓰다가 이듬해 미군방첩대CIC요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승만정권은 전민족적지지를 얻지못하고 외세에 의해 수립됐다. 기득권유지의 사리사욕에 찬 친일파에 기원을 둔 반민족·반민중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북에서 도망쳐온 친일파·친일지주와 그들의 자식들이 이승만정권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이무리들은 북정권을 무력으로라도 제압해야했다. 이승만정권은 수립이후 줄곧 북진통일을 주장했고 전쟁이 발발된 이후로도 정전협정체결을 반대했다. 이승만은 전쟁중단을 원치않아서 끝까지 <휴전협정>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수립돼 권력의 정통성을 갖지못해 미국의 지지에 더 기댔고 미국의 미남일3각동맹전략으로 남민중의 절대적인 반일정서에도 불구하고 남일협정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북은 군사쿠데타로 수립된 군사정권을 반대했다. 1970전후 중미관계개선의 국제정세에서 미국은 박정희정권에도 북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했다. 미국은 주남미군의 일부철수까지 추진하면서 남북관계개선을 추진했다. 김일성주석은 이때 북을 찾아온 이후락에게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의 합의를 제안했는데 이를 조건 없이 수용해 놀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1973 박정희는 이른바 <6.23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이라며 남북유엔동시가입을 주장했다. 김일성주석은 이날 오후 평양에서의 외국사절단환영행사연설에서 <조국통일5대방침>으로 단일국호유엔가입을 제안했다. 북은 남북유엔동시가입이 코리아의 2개국가를 인정하는 <2개의조선>정책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1980년대이후 전두환정권의 <민족화합민족민주통일방안>, 노태우정권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김영삼정권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3단계통일국가론이다. <국가연합>은 북을 국가로 인정하지않는다는 <대한민국헌법>과 상충되지않는것인지, 남북연합이 단지 과도적단계라면 북의 연방제와 본질적차이가 무엇인지, 북과의 차이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면 남북관계개선과 민족의 단결·단합의 의지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있다. 이방안들이 1980 북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의식한 남정부들의 기만책에 불과하다고 비난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