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니모임(임은조)은 쿠바이민2세다. 헤로니모부친 임천택은 가난과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상낙원>이라는 멕시코 유카탄반도로 1905.4.4 이주했다. 당시 함께 이주한 조선인 1033명은 22개농장으로 팔려갔다. <지상낙원>이라는 말과는 달리 멕시코 애니깽농장에서 조선인은 그야말로 노예였다. 그럼에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임천택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들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며 조선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임천택은 그공로를 인정받아 1997 남정부로부터 건국훈장애국장을 받는다.
임천택의 애국정신은 헤로니모에게 계승됐다. 헤로니모는 학생대표로 활동했으며 에드와도치바스가 창립한 민족주의성향의 정당에 가입해 반정부투쟁을 전개하다 반동정부로부터 연행되기도 했다. 1953.7.26 피델카스트로를 중심으로 한 165명의 쿠바청년들이 산티아고의 몬카다병영을 습격했다. 이사건을 계기로 쿠바전역에 <7.26운동>, 무장투쟁노선이 전면에 부각됐다. 헤로니모도 즉시 이운동에 합류했다. 카스트로가 중심이 돼 무장투쟁을 준비하는 동안 헤로니모는 수도 아바나에서 지하투쟁을 맡아 선전활동·혁명세력규합·정보수집등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이공로가 인정돼 혁명승리후 쿠바정권으로부터 헤로니모에게 <지하투쟁메달>이 수여됐다.
헤로니모는 혁명과정뿐만아니라 건설과정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지하투쟁경험을 살려 처음에는 경찰청장 아메헤이가스의 보좌관으로 발탁됐다. 영화에 나왔듯이 헤로니모는 단순한 경찰업무가 아닌 비밀업무를 수행한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곧바로 산업부의 고위관료로 임명돼 체게바라와 함께 일을 했다. 경찰청에서 산업부로의 이동은 헤로니모가 대학을 졸업한 극소수의 간부중 1명이었고 건설과정에서 인텔리가 최우선으로 필요한 부처는 경제부처여서다. 헤로니모는 게바라와 함께 1961부터 4년간 국유화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쿠바산업부·식량산업부를 거쳐 1988 식량구매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은퇴한다. 헤로니모의 행적은 민중정권수립후 건설과정에서의 최우선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헤로니모가 말년을 동포사업에 집중한것을 통해 헤로니모의 조국은 코리아며 마지막순간까지 애국의 길을 걸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선친의 애국심이 헤로니모에 와서 사회주의신념으로 연결된다. 진정한 애국이란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기에 그렇다. 이는 민중에게 정권과 생산수단을 돌려주는것으로 실현된다. 한편 카스트로의 방북때, 북은 AK자동보총10만정을 지원하며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객관적사실은 영화말미에 드러나는 내용상한계를 극복하게 한다. 사람은 죽어서 일을 남기고 그일에는 그삶의 본질이 담겨있다. 애국자이자 국제주의자인 공동주의자 헤로니모의 삶은 쿠바의 혁명과 건설, 국제공동주의의 역사에 길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