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1 주은래총리, 1976.9 모택동주석이 서거했다. 1975.4 베이징방문은 김일성주석이 주은래총리등 중국혁명1세대들과 함께하는 마지막자리였다. 병중이던 주은래총리는 이자리에서 김일성주석에게 등소평부총리를 소개했다. 이때 김일성주석과 등소평부총리가 4차례 만난것으로 알려졌다. 1975.11.18 30차유엔총회에서 남코리아의 유엔사해체와 미군철군등에 관한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듬해 1976.8 유엔총회에서도 코리아에서 핵무기를 철거시킬데 대한 결의안이 상정됐지만 판문점미루나무사건이 발발하면서 결의안은 무산됐다. 키신저가 남북미중4자회담을 제안한것도 이시기다. 김일성주석은 1989.11 중국을 방문한데 이어 1990.9에도 방문했다. 1991.10까지 3년간 연이어 방문했다. 이때 김일성주석은 베이징·타이산(태산)·지난(제남)·취푸(곡부)·난징(남경)·양저우(양주)등을 방문했다. 장쩌민총서기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양저우에서 다시 만나 직접 안내했다. 1990.9 남언론은 김일성주석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고 보도하면서 잇따른 회담을 갖고 최근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있는 코리아반도주변정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있다고 전했다. 중국정부당국은 김일성주석의 방문사실을 확인해주지않고있다고 하면서도 선양(심양)역에서는 대규모 환영행사가 있었다고 남언론은 전했다. 1990.5.24 최고인민회의시정연설에서 김일성주석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해야한다,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는 원칙에서 대외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한다는 <조국통일5개방침>을 천명했다. 또 유엔단일의석가입안을 제안했는데 이는 1973 단일국호로 유엔가입을 할것에 대한 제안을 보완한것이다. 1989 문익환목사가 방북하고 북의 범민족대회제안이 있었고 1990 1차범민족대회가 진행됐으며 이해 11월에는 범민련이 결성됐다. 북남당국간에는 1990.9~1992.9 고위급회담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