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과 동북지역에서의 항일전쟁과정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항일교전세력으로 1942.7 중국·소련과 국제연합군을 결성했다. 1945.8.9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명령이 하달됐고 소련의 대일선전포고가 이뤄졌다. 소련군은 38도선이북에 진주해 해방군으로써 주둔한다는 점을 밝히고 코리아인들 스스로 독립국가건설에 나설것을 호소하면서 미군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1948.9.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북과 소련은 이해 10.12 외교관계를 설정하고 소련군은 이해 12월 완전철수했다. 중국은 일제패망이후 국민당과의 내전으로 혁명전쟁이 발발했다. 북은 민주주의혁명세력으로 이전쟁의 후방기지를 자처하며 동북항일연군에서 전환된 동북민주연군으로써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중국의 혁명전쟁이 승리한 뒤 1949.10.1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10.6 조중간의 외교관계가 설정됐다. 1950 중국은 대만으로 도망간 장개석정부를 완전히 끝내야했지만 코리아전쟁이 발발하고 유엔군으로 분식한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이후 북측지역으로 치고 들어오자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해 1950.10 코리아전장에 참가했다. 중국의 국내혁명전쟁과 코리아의 <조국해방전쟁>으로, 북중양국은 피로써 맺은 동맹 <혈맹>이 되지않을수 없었다. 1961.7 북소와 북중은 자동개입조항이 포함된 군사동맹으로 각각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과 <조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북과 소련의 관계는 중소갈등과 소련의 수정주의노선으로 원활하지못했지만 2000.2 푸틴집권시기 러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조러친선선린협조조약>을 체결하면서 북러간 친선관계를 발전시켰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생애마지막시기 2011.8 러시아를 다시 방문해 북러간의 협력관계를 확인했다. 1994 김일성주석이 서거하고 대외활동을 하지않았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남북수뇌회담을 앞둔 2000.5 중국을 방문하면서 이전과 같은 관계를 확인했다. 2018.3~2019.1 김정은위원장의 4차례의 방중과 2019.6 시진핑주석의 방북이 이뤄지면서 북중간에 전략적협동관계를 마련했다. 북러간에는 2019.4 블라디보스톡 북러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북러관계를 확인했다. 김정은위원장은 올해 2.4 베이징동계올림픽개최에 맞춰 시진핑주석에게 <나는앞으로도총서기동지와굳게손잡고조중두당,두나라관계를두나라인민의염원에맞게새로운높은단계에로계속승화발전시켜나갈것>이라고 밝힌 축전을 보냈다. 김정은위원장은 6.12 1991 러시아연방이 성립된 <러시아의날>을 기념해 푸틴러대통령에게 <국제적정의를수호하고세계의안전을보장하기위한여정에서두나라사이의전략전술적협동이더욱긴밀해지리라는확신을표명>한다며 전략전술적협동관계를 강조했다. 북중러는 그역사성과 현시기 반제반딥스전선의 공통된 이해관계로 해서 공고하고 강력한 전략적관계를 형성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