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간의 충돌도 빈번해지고 긴장국면은 한층 강화됐다. 1949 미군철수를 전후해 이승만정부는 계속 전쟁을 언급했으며 대북군사도발과 38°선침범을 되풀이했다. 이해 미제와 이승만정부는 <북벌군사전략계획도>를 작성해놓고 전쟁준비를 다그쳤다. 군비를 증강하고 군대와 전투경찰병력을 대폭 늘렸으며 군사장비를 확충하고 군용비행장들을 신설·확장했다. 조선측은 1949 한해동안에만 2617회의 대조선무장도발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히고있다. 해제된 구소련의 비밀외교문서들에 따르면, 1949.4.20 국방부장 허시리푸스키와 총참모장 시즈민커가 38°선의 형세를 스탈린에게 <우리가북조선에서철수하자<남측>의38°선규정파기가이미도발적이며상시적으로있어왔다.근1개월동안이런규정파기사건이빈번하다.>·<금년1.1~4.15기간38°선에서37차례의규정파기사건이있었다>고 보고했다. 5.2 조선주재소련대사스티코프보고서에는 <남조선당국이북방의무장침입실행계획을위해<국방군>인원을확대했다.정보에따르면<국방군>인원은이미금년1.15만3600명에서1/4분기말7만명으로증가했다.동시에그들은특히기술병,기계화군,특수군을중시해이런군사가1~3배로증가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남당국이38°선부근지역에집결시킨부대가이미4만1000여명에달하며그중평양방면으로향하는인원은3만명이다.북방진공작전계획은이미결정됐고,아울러1여단의부대장에게전달됐다.6월중적극적인행동이있을것으로예상된다.>고 말했다. 5.28 스티코프는 모스크바에 김일성수상의 통보를 전달했는데 그에 따르면 <남조선군의몇개대대가금천시이남45㎞학정리일대에서공격을시도했다.남조선의1개대대가38°선이북을향해진출해고지를점령했다.>·<남조선군지휘부는이미개성지역에2개대대를집결해38°선이북의몇개고지를점령하려고한다>고 했다. 또다른 첩보에 따르면, <춘천지역철원방면으로남조선은이미보충대2개대대와6여8단의1개대대를집결시켰다>고 했으며 통보에는 또 <남조선측은최근제주도사건진압에참가한부대를38°선부근으로배치했다>고 돼있었다. 6.18 스티코프의 보고서에 따르면 6~7월 형세는 더욱 긴장이 고조됐다. 남측군대와 경찰은 여러차례 옹진지역에서 마음대로 38°선을 월경하고있고 이지역의 전투는 현재까지 진행되고있으며 남측부대의 수도 증가하고있다. 남측부대가 한차례북방지역 10㎞까지 침입했다가 북방경비여단이 행동을 취하자 38°선으로 되돌아갔다. 북측부대가 전술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고지2개를 점령해 현재 쌍방이 고지쟁탈을 위한 전투를 벌이고있다. 옹진지역사건으로 이승만은 6.11 성명을 발표해 <공산당에게중대한손실을안겨줄돌격계획을제정했으며최근2~3주내에이계획을실현할것>이라고 했다. 7.13 스티코프가 비신스키러외무상에게 보내는 전문속에는 옹진지역에서 포로가 된 남조선사병(18단2대대소속)의 첩보에 근거하면 <그들의지휘관은7월이후여러차례북조선군이남방을공격할것이라는단언을해왔으며,따라서남조선군은기선을제압하고북조선군에기습적인타격을가해8.15(광복절)전에는북조선을점령할것이라고얘기했다>고 한다. <12단의임무는격리산고지(해주에서서쪽으로30㎞)이다.18단의임무는옹진지역에서출발해13단(현재의정보에따르면그단은개성지역에배치됨)의협조로북으로진공해해주를포위하고도시북측군대집단을섬멸해1주일내에해주도를점령하는것>이라는것이다. 스티코프는 이승만이 발표한 <7월북방군대에대한공격을한다>는 정보를 통보했다. 전선에서의 이런 충돌외에도 남에서는 <후방의안정>이라는 미명하에 통일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탄압학살이 자행됐고 남조선인민유격대에 대한 대규모<토벌작전>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