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추진단)은 용산 대통령집무실앞에서 <제네바협약준수 전쟁노병안학섭선생송환! 국가보안법철폐!> 집회를 열었다.
먼저 참가자들은 제국주의의 땅에서 해방을 위해 싸우다 순국했고 분단된 땅에서 통일을 위해 싸우다 먼저 간 선열애국동지들을 기리며 묵념한 뒤 <임을위한행진곡>을 불렀다.
사회를 맡은 지창영미군철수투쟁본부공동대표는 <(안학섭선생은) 총을 들고 미군을 쫓아내기 위해 싸웠다. 전쟁포로이다.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송환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43년 가까이 이땅에서 감옥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미군 없는 세상을 위해서 여생을 살고 싶다면서 송환기회를 뿌리치고 이 땅에 남아 투쟁해왔다. 이제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판단해서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전쟁노병 안학섭선생 즉각 송환하라!>, <제네바협약 준수하여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96세노병의 마지막소원이다 안학섭선생 송환하라!>, <안학섭선생 송환으로 남북평화 길을 트자!>, <안학섭선생 송환하고 한반도평화 실현하자!>, <반민족반통일악법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구호를 외쳤다.
이적추진단공동단장은 <안학섭선생님은 지금도 군인이다. 아직도 자대에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를 하지 못했다. 제대하지 못한 노병은 세계에서 최장기수인 안학섭선생님밖에 없을 것이다. 본인이 원해서 제대를 못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억압과 <대한민국>의 잘못된 재판으로 희생을 당한 것이다.>라면서 <안학섭선생님은 정복을 입고 완전군장을 한 채 분대원들을 거느리고 남하를 했다. 그리고 장장 60일동안 설악산에서 싸웠다. 그 설악산에서 2명의 분대원들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생포당하게 된다. 그렇게 생포당하면 당연히 포로로 대우해야 하고 본대로 돌려보내주는 것이 마땅했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국방경비법에 의해 징역 42년4개월, 세계 역사상에도 없는 살아있는 생존최장기수가 됐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곳은, 이 땅은 내 조상의 땅이로되 체제는 미국이 지배하는, 미점령군이 지배하는 땅이다.>라면서 <돌아갈수 있는 기회가 1번은 있었다. 그러나 미점령군에 지배당하고 있는 땅에 군인으로 파병이 됐으면 적어도 점령군은 쫓아내고 자대로 귀대해야 되지 않는가. 이것이 마땅한 것이다 하여 그대로 이 땅에 주저앉았다.>고 성토했다.
계속해서 <지금은 임무를 다 하였다. 올해 96세이다. 폐부종으로 앓고 있다. 언제 심장이 멎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제 죽음만큼은 내 사랑하는 조국, 북반부에 묻히고 싶다는 그 간절한 소원을, 세계인류에게 호소한다. 그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정부는 당연히 송환을 해야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노전사를 받아줘야 한다. 우리는 전쟁포로로 붙잡혀서 적어도 70년이상 이곳에 억류돼있는 안학섭노병을 남북양측에서 받아줄 것을 촉구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명희추진단공동단장은 <2000년 송환때 이 땅에서 미군이 완전히 나갈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내가 할 역할이다 말씀하신 것은 이미 그동안 선생님의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폐부종으로 폐에 물이 차면 호흡이 곤란해져 병원에 입원하셨다가도 좀 나아지시면 광화문투쟁현장에 나오시는 선생님을 우리는 늘 걱정스러워하면서도 막지 못하는 것은 선생님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분투하시는지를 알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생의 마지막까지 투쟁하다 가겠다 하신 그 약속은 이미 지키신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주와 통일에 대한 헌신과 열정으로 우리 후배들을 반미투쟁의 길로 이끌어오시고 든든하게 뒤에서 밀어주셨다. 이제 선생님이 죽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선생님의 동지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드려야 한다. 통일부는 선생님의 요구대로 3국이 아닌 판문점을 통해 송환할 것을 결단하고 실질적인 협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를 낭독했다.
지난 집회에 이어 안학섭선생이 병환중에도 기자회견에 참가해 발언했다.
안학섭선생은 <기자들이 많이 묻는데 왜 2000년도에 북으로 갈 때 안갔는가 한다. 여기서 오해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북으로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떨어져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악선전만 하니까 전부 그거에 속은 거다, 그래서 가서 실지 보겠다, 보고서 오겠다 하고 간 거다. 그리고 정세를 단기적으로 낙관적으로 본 거다. 그래서 어떤 동지는 한달 있다가 한달 가서 보고 듣고 오겠다고 했고 어떤 동지는 늦어도 3년내에 자유왕래가 된다고 봤다. 저는 그렇게 안봤다. 만일 정세가 순조롭게 발전해서 몇개월 또는 3년내에 자유왕래가 된다면 그때 가도 늦지 않으니까 나는 그때 가겠다 하고 떨어진 거다. 내가 북이 싫어서 안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먼저 가신 김선명선생이 저하고 옆에 방에 있었는데 전부 토의했다. 만일 북에서는 우리를 인정했으니까, 남에게 파견했다는 걸 인정했으니까 우리를 소환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한 대책도 토론했고 우리 둘이 안거니까 내적 문제인데 그래서 안가기로 했다. 그런데 최고장기수 두사람이 다 안가면 적들에게 역이용당한다. 악선전에 이용당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가라고 하니까 이 동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갔다 오겠다면서 갔다.>고 말했다.
이어서 <또 어떤 후배가 얘기하더라.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다 빠져나가면 구심점이 없어서 당분간 방황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 내가 여기 나온 목적이 뭔데. 이 땅에 미국놈뿐 아니라 일본놈, 외국놈을 외국군대를 둬서는 안된다, 이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여기 주둔하고 있는 조건에서 내가 안방을 내주고 그냥 간다는 것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남았다). 북에 가서 누구더러 미군 물러가라고 하나. 미군 물러가라고 한마디를 하더라도, 한사람을 붙들고 그것이 아니라는 걸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해야지 북에 가서 누구에게 하냐. 그래서 저는 안간 거다.>라고 밝혔다.
안선생은 현기증으로 발언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마디만 더 하겠다면서 <사람의 양심이 있다. 사람은 생명이 2가지가 있다. 정치적 생명과 생물학적 생명. 나는 인간이다.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기 위해서 여기 남았던 것이다.>라고 분명히 전했다.
참가자들은 힘차게 <동지가>를 불렀다.
추진단은 집회후 대통령실에 송환촉구입장서를 전달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기자회견문]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을 하루빨리 송환하라!
96세의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이 조국으로의 송환을 촉구하고 있다. 안선생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의 설움을 딛고 조국의 자주와 해방을 위한 길을 선택했다. 전쟁시기 완전무장하고 부대원을 인도해 남측에 나온 안선생은 1953년 4월 붙잡히며 전쟁포로가 됐다. 안선생은 <국제포로기준에 의하면 전시고 또 완전히 인민군대정복을 하고 나왔기 때문에 포로로 규정해서 교환했어야 하는데 나는 감옥에 갇혀있었다>며 <무참히 인권을 유린당했다>라고 증언했다. 1949년 체결된 제네바협약의 제3조와 제118조에는 전쟁포로의 인권과 송환권리가 명문화돼 있고, 특히 118조에는 적대행위종식과 함께 모든 포로의 자동적인 송환을 규정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3조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에도 60일내 직접송환인도가 명시돼있다.
안학섭선생의 송환은 이념과 정치를 뛰어넘는 인간존엄에 관한 문제다. 안선생은 종전후 즉각적인 석방과 송환을 보장받았어야 했지만 1953년 <국방경비법>에 의해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고 억울하게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60년 4월항쟁이후 장기수들은 20년형으로 감형받고 1970년대초 출소를 앞두고 있었으나 박정희군사파쇼권력의 살인적인 전향공작에 의한 무자비한 폭력·고문에 시달리며 숨을 거두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고통과 치욕의 존엄말살의 43년을 온몸으로 감내하고 옥중투쟁으로 맞받아가면서 사상과 이념을 굳건히 견지한 채 1995년 출소한 안선생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다.>라고 천명했다. 72년이나 늦은 안학섭선생의 송환을 오늘에라도 반드시,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의 송환은 마땅히 판문점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1993년 최초로 송환된 전쟁노병 이인모선생과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남북간 송환의 건에 대해 합의한 뒤 9월 실행된 63명의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모두 판문점을 통해 진행됐다. 한편 최근 정동영통일부장관은 민족간 화해와 단합을 내용으로 하는 6.15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5대합의서의 국회재비준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또 지난달 25일 남북연락채널복원과 28일 민간대북접촉전면허용을 공언했다. 이재명정권은 이번달 4일 대북확성기철거를 시작하기도 했다. 지난 역사와 최근 흐름은 전쟁노병의 판문점을 통한 북송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일부는 하루빨리 결단해서 안선생의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은 통일애국투사로서 마땅히 그 뜻을 존중받아야 한다. 안선생은 2000년 송환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집안방에 강도를 놔두고 집을 비워주나. 미군 물러가라는 말을 여기서 해야지 어디서 하나. 그래서 안갔다.>며 <얼마남지 않은 여생, 식민지하에서 그동안 압제에 당한 것도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다>, <감옥에서 생사를 같이 하던 동지들이 묻혀있는 곳으로 갔으면 하는 희망이다>라고 피력했다. 우리의 요구는 명백하다. 정부는 전쟁노병 안학섭선생의 북송문제를 인도적 차원으로 검토하고 가장 빠르게 실질적인 협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안학섭선생은 전쟁포로로서 제네바협약에 의거 제3국이 아닌 판문점을 통한 송환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안선생이 겪은 고통의 근원은 조국양단을 초래한 미군과 반민족반통일파쇼악법 국가보안법에 있다. 안학섭선생의 민족애와 투쟁의지를 따르는 우리는 미군을 철거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며 민족·민중이 주인되는 새세상을 앞당길 것이다.
2025년 8월8일 용산 집무실앞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