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 동아시아에 미증유의 외환위기가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1997.1 한보철강부도를 시작으로 삼미·진로·대농·한신공영·기아등 대기업그룹들의 연쇄부도가 났다. 결정적으로 이해 7월 태국바트화, 8월 인도네시아루피화가 폭락하면서 외환위기가 불어닥쳤다. 김영삼정부는 원·달러환율을 무리하게 달러당800원대로 방어하려다 외환보유액을 허비했다. 당시 금리는 연20%대였고 환율은 1900원대로 폭등했다. 김영삼정부의 고금리정책은 당시 <한국>경제에 심각한 패착이었다. 국가부도직전에 1차로 IMF(국제통화기금)와 구제금융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33억5000만달러규모를 지원받았다. 미대통령 클린턴은 김영삼에 IMF협상을 빨리 마무리하라고 압박했다. <한국>의 실질적협상상대는 IMF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협상시작직전 1997.11.26 미국무부가 주<한>미대사관에 <수석자문관은<한국>과협의될IMF패키지가금융부문개혁,긴축적통화정책,<한국>시장개방조치라는3가지요소를포함할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IMF지원금은 외환부족으로 대출을 회수하지못한 해외투자자들의 자본이탈을 촉진시켰다. 이런 와중에 12.18 대선에서 김대중이 당선됐다. 김대중당선인은 선거운동기간 임금·정리해고6개월동결을 공약했다. 12.22 미재무차관 립턴과의 만남에서 김대중은 <기업이망해해고를하지않으면안되는상황에는해고가불가피>하다며 당선직후 임금·정리해고공약을 깨고 미재무부·월가에 강력한 시장개방·개혁의지를 확인시켰다. 12.24 IMF와 13개주요국의 조기자금지원이 추가됐다. 국가부도만은 면하게 해줘 <성탄절선물>이라 일컬어진 이합의는 콜금리추가인상과 이자제한폐지, 외국인주식소유한도폐지, 채권시장완전개방과 금융상품투자자유화, 조기무역자유화등 조기시장개방조치, 금융서비스자유화, 사실상 정리해고제도입·파견근로자제입법으로 <한국>시장경제를 전면개방시켜놨다. 이같은 조치에 당시 클린턴마저도 <미국에서조차도결코받아들이지않을자본주의적관행>이라고 했다. 실제로 구제금융투입이후 대량해고·실업이 더 폭증했고 외국투자자들은 헐값에 <한국>기업과 주식을 인수했다. 1997.12~1998.4 월평균3000건이상의 도산이 발생했다. IMF구제금융투입이후 월가·초국적금융자본은 금전손실최소화·경제이익극대화된 반면 <한국>경제·민중에게는 엄청난 비용이 전가됐다. 김대중은 당선되자마자 4대(금융·기업·공공·노동)구조조정·대규모공적자금투입을 할수밖에 없었고 5대시중은행들은 합병되거나 해외로 매각됐다. 포스코·한국전력·한국통신(KT)등 공기업은 사영화됐다. 2024.12 환율은 1300원대에서 12.3비상계엄이후 1480원을 돌파했다. 2025.8 3500억달러규모대미투자안이 공개되고 심각한 외환유출불안에 기인해 원화가치는 더 떨어지고있다. 2025.10~11기준 1470원대를 상회하며 연내1500원대상승까지도 내다보는 분석이 나왔다. 11.14 <한>미관세협상설명자료(팩트시트)를 발표했다. 총2000억달러·연상한200억달러10년분할투자와 기업주도1500억달러<마스가(MASGA)>프로젝트투자를 골자로 한다. 여기에 <한국>대기업들의 1500억달러규모대미투자는 별도로 진행된다. 기업들은 한편으로 이재명정부에 금산분리규제완화를 요구하고있다. <AI버블론>은 삼성·SK·현대등을 겨냥하고있다. 10.1미<한>환율정책합의로 환율방어를 못하고 국민연금까지 동원하는데 경제출로가 없다는 비판을 피하지못하고있다. 대규모외화유출이 예상되는 <한국>경제정책으로 인해 환율의 지속적인 상승세가 예견된다. 제국주의미국은 김대중정부를 통해 엄청난 민중희생을 강요했듯이 이재명정권에게도 같은압박을 반복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