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 항쟁의기관차〉 2010.11 대화가 불가능해지면 연평도포격전?

2008~09 4차북미·반미대결전이 진행되던 2008 하반기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은신>행보와 김정은위원장의 최고사령관대리로 알려진 시기다. 2009.4.5 광명성2호-은하2호를 발사하고 5.25 2차핵시험을 진행했다. 2009.8 클린턴전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방북은 두여기자송환을 명분으로 진행돼 북미간의 정치협상이 이뤄지진 않았다. 이과정에 6자회담을 통해 진행된 북비핵화다자협상은 실패했다. 2차핵시험전 2009.4 북외무성은 6자회담불참을 공식선언했다. 2018.6 김정은위원장의 친서를 가지고 김영철부위원장이 처음으로 미워싱턴D.C를 방문했을때 미언론들은 2009 정보국라인의 북미채널성과라고 보도했다. 클린턴의 평양방북이 주목받는 이유다. 또 이시기는 남에 반북극우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의 긴장이 격화돼 기존의 남북합의들도 이행되지못하는 상황이었다. 2010.11.23 연평도포격전이 벌어졌다. 연평도에 정확히 군시설내에만 포격이 가해졌고 해병2명과 부대내에서 근로하던 민간인2명이 사망했다. 동아일보는 남측군의 대응을 비판하면서 북의 전자기파(EMP)공격에 대포병레이더(AN-TPQ-37)가 고장나서라고 보도했다. 이에 국방일보는 <사실이아니다.통상전자전에사용되는EMP탄은고주파를일시적으로발생시켜장비의전자회로를불능화하는것,전파방해는특정주파수대에영향을미쳐기능을제한하는것>이라며 <당시연평부대대포병레이더는정상작동중이었다>·<참고로EMP탄이실제개발돼배치된바는공식적으로확인되지않고있다>고 반박했다. 연평도는 그당시에만 유독 초점이 된 지역이 아니다. 1953 정전협정이후 주남미군은 자체의 필요에 따라 해상군사분계선으로 NLL(북방한계선)을 임의로 그었다. 즉 북과 이경계선에 대해 합의한바가 없다. 1973 북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정전협정상 군사분계선(MDL)을 서해상에 연장해 해상경계선으로 해야한다며 그이북인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5도주변을 지나는 남측선박은 사전허가를 받아야한다고 공식 이의를 제기했다. 1999.6 꽃게잡이철서해상교전이 발발하자 북은 1999.9 서해상군사경계선을 선포하고 <서해5도통항질서>를 제시하면서 서해5도의 통로인 좌우폭1마일의 수로만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1999.6, 2002.6 연평도근해에서, 2009.11 대청도해역에서 교전이 발생했다. 남과 북 함선에서 적지않은 군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NLL을 그어놓은것은 미군이지만 결국 NLL논란과 서해교전에서 미는 빠지고 남과 북의 군인들만 희생됐다. 이명박시기에 대화가 불가능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북은 단적으로 보여줬다. 평화적방법이 안되면 비평화적방법으로라도 해야한다는것이 북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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