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복지를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복지는 아니다. 기업감세를 주장하는 <감세복지>는 물론이고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증세복지>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포지션이 전자와 후자에 가까운데, 누구나 알다시피 둘다 민중과 인연이 없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반민중자본이 민중을 기만하기 위해 시소의 양측에 놓고 <쇼>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무엇보다 민중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민중이 각성하면 세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민중을 위한 복지는 민중에 의해 실현된다. 민중을 위한 복지, 민중에 의한 복지는 오직 <환수복지>밖에 없다. 노동계급혁명론에 의거한 <몰수복지>도 있지만 계급노선이 강해 상대적으로 대중노선이 약한 단점이 있다. 남코리아처럼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사회일수록 계급노선에 기반하면서도 대중노선을 충분히 반영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심지어 부르주아사회의 자유민주주의질서하에서도 구현될수 있는 <환수복지>의 특별한 의의가 돋보인다. 민중의것을 민중에게로 돌려주는것이기에 그렇다.
환수복지는 오직 민중민주사회에서만 가능하다. 민중민주사회는 체제로 보면 부르주아사회다. 향후에는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부르주아사회다. 다만 민중을 위하고 민중에 의하는 민중민주정당이 집권한 사회다. 그 민중민주의 사회에서만 환수복지가 이뤄진다. 환수에 저항하는 불의의 세력을 세련되게 제압하면서 사회의 99% 절대다수 민중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정의가 전격적으로 실행된다. 이후 민중의 힘과 첨단과학에 의거해 고도의 생산력발전이 이뤄지며 완전한 자립과 공영의 단계로, 더나은 민중복지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민중민주사회는 반드시 자주화를 전제한다. 자주 없이 민주 없다. 예속화가 비평화로 됐기에 자주화는 비평화로만 된다. 비평화적방법으로 자주화가 이뤄진 덕분에 민주화는 평화적방법으로 가능하다. 나아가 평화적방법으로의 통일도 가능하다. 결국 변혁의 주체와 대상이 구별돼 누가 누구를 하는 첨예한 계급사회에서 투쟁이란 실천은 사회발전의 유일한 동력으로서 진리와 오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민중을 위한 복지인만큼 민중에 의해 실현된다. 민중이 원하고 민중이 준비되면 이뤄질수밖에 없다. 환수복지의 새세상은 결코 멀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