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 항쟁의기관차〉 북미대결전과 김정은위원장과 트럼프대통령간의 정상회담

북미간에 대결전은 미군이 1945.8 일제패망이후 코리아반도에 진주하면서 시작됐다. 남에 들어선 미군정은 남코리아에 대한 미제국주의지배체제를 수립했다. 남정부가 의지할곳은 미국뿐이었다. 경제·군사도 모두 미제국주의에 의탁해 북의 인민정권과 대립했다. 이런 현실은 북의 입장에서 볼때 한번도 달라진적이 없었다. 북은 일관되게 미제국주의에 맞섰다. 1953.7 정전협정에 합의했지만 후속회담은 성사되지못했다. 1954 제네바회담에서 코리아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도 이뤄지지못했다. 베트남전쟁이 절정으로 치닫던 1968.1 코리아에서도 푸에블로호사건이 발생해 군사적긴장이 급격히 높아졌다. 1970년대 북최고인민회의는 미의회에 평화협정체결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역시 어떤 논의도 이뤄지지못했다. 1976.9 유엔총회에서는 코리아의 미군철거에 대한 결의통과를 예상하고있었지만 8월 판문점미루나무사건으로 코리아의 군사적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북미회담이 다시 이뤄진것은 1980년대말 북핵문제가 제기되면서다. 1993.3 북이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를 선언하면서 1993.6.11 뉴욕에서 북미고위급회담을 하게 되고 북미간 대화가 본격화됐다. 1994 제네바기본합의에 의하면 2003까지 10년안에 미국은 북에 경수로를 제공해야했지만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않았다. 2000.10.12 클린턴정권말 북미공동코뮈니케를 이끌어내고 미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위해 미국무장관이 방북했지만 11월대선에서 재집권에 실패한 민주당정부는 대통령방북을 포기했다. 클린턴은 이후 2009.8 오바마정부의 특사로 방북해 김정일국방위원장과 회담했다. 2003 북은 NPT탈퇴하고 핵개발에 전면적으로 나서 공식적으로 핵무장국가가 됐다. 북과 미국은 1990년대~2000년대 북미양자회담과 6자회담등 다양한 회담을 거쳤다. 오바마정권은 <전략적인내>를 표방하며 북과의 대화에 나서지않는 입장을 주로 견지했다. 트럼프정권이 등장하며 2018.6.12 북미싱가포르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비핵화워킹그룹>과 <착공없는착공식>으로 북남관계개선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2019.2 2차정상회담이 진행됐다. 새로운 돌파구를 열것으로 예견되던것은 정반대로 됐다. 2020 북은 스스로 천명한대로 <정면돌파전>의 <새로운길>로 들어섰다. 2020.5.24 당중앙군사위에서는 <고도의격동상태>가 제시되고 2020.6.4 대남총괄 김여정1부부장의 담화로 대남공세가 시작됐다. 6.23 대남군사작전계획이 <보류>되며 모든 공세가 일시 중단됐다. 7.10 김여정1부부장은 의미심장한 담화를 발표하며 김정은위원장의 인사를 전했다. 트럼프미정부와의 탑다운방식의 북미대화는 트럼프정부의 정권연장실패로 중단됐지만 트럼프와의 신뢰관계는 계속되고있는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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