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 NAM)은 군사동맹, 열강의 군사블록에 참여하지않고 온갖 형태의 침략과 예속, 간섭을 반대하는 <블록불가담>노선을 의미한다. 1955.4 반둥에서 반제·자주·블록불가담을 위한 투쟁을 국제적규모에서 하나의 단합된 역량으로 묶어세우기 위한 첫시도로 아시아아프리카회의가 있었다. 1958.1 유고슬라비아·인도네시아국가수반들이 어떤 군사동맹에도 참가하지않는 나라들만을 대상으로 <특별정상회담>을 열것을 발기했다. 그후 1961.6 카이로에서는 비동맹운동국가정상회의를 위한 준비회의가 진행됐으며 이해 9.1∼6 25개국대표들의 참가밑에 비동맹운동국가정상들의 1차회의가 진행됐다. 비동맹운동에는 상설기구가 없으며 비동맹국가정상회의·외무장관회의·조절위원회등에서 결정된 내용에 따라 운영된다. 2011기준 120개 회원국과 18개 참관국이 참여하고있다. 비동맹운동의 목표는 1979 아바나선언에서 <강대국이나블록에대항할뿐아니라,제국주의·식민주의·신식민주의·인종주의,모든형태의외국침략·점령·지배·간섭·패권과투쟁하여>·<비동맹국가들의독립,주권,영토통일,안보>를 보장하는것이라고 밝히고있다. 이들은 유엔회원국중 2/3를 차지하며 특히 대부분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으로, 세계인구의 55%를 점하고있다. 열강들의 패권과 착취, 약탈에 반대하는 신흥세력나라들의 투쟁에는 1964 유엔무역개발회의1차회의에서 <77개국공동선언>의 발표를 계기로 마련된 <77개국집단>도 있었다. 이선언은 국제경제분야에서 국제적협조를 확대하고 단결을 도모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남·북코리아는 각각 1975.8 비동맹외상회의에서 비동맹회원국으로 가입신청했다. 북의 신청은 받아들여졌지만 베트남전쟁에 미국의 동맹국으로 참전한 남은 가입을 거부당했다. 이는 단순한 남코리아의 <외교참사>가 아니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지역적집단안보체제를 마련하지못했다. 중동·아랍지역과 동남아시아의 지역적집단안보체제도 원활하지못했다. 제국주의세력이 장악하고있는 나토만 그기능이 가능했다. 남코리아는 가장 친미예속적이었지만 지역의 집단안보체제가 불가능한 구도였다. 미국은 베트남전쟁과 달러금태환중지·인플레이션세계공황등 정치군사·경제적위기에 봉착했고 비동맹운동은 더욱 확대·강화됐다. 비동맹운동과 제3세계신흥세력의 성장과 함께 1973.12 28차유엔총회에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해체결의안을 채택했고 1975.11 30차유엔총회에서는 코리아에서의 유엔사해체와 외국군철수를 내용으로 하는, 남측결의안과 북측결의안이 모두 채택됐다. 2개의 안은 모두 유엔사해체에 대한 내용을 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