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 항쟁의기관차〉 원칙 잃은 다자안보체제, OSCE

1972 SALT(전략무기제한협상)협정체결직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대 바르샤바조약기구(WTO)의 동맹대 동맹간의 새로운 군축협상을 제안했다. 반면 동맹블록의 해체를 주장해온 소련은 전유럽안보회의형태의 다자회담을 제안했다. 미국은 소련이 제안한 CSCE(유럽안보협력회의)에 참여하고 소련은 미국이 제안한 상호균형감축협상에 참여했다. 미국이 제안한 상호균형감군협상은 양군사동맹의 병력산정문제, 협상방식 및 감축대상 무기처리문제, 검증·사찰문제등에 대한 이견으로 10년이상 진전이 없었고 CSCE는 나토16개국과 바르샤바조약기구7개국 그리고 바티칸·산마리노등 도시국가를 포함한 비동맹·중립성향의 12개국이 포함돼 총35개국이 1973.6 예비회담을 거쳐 같은해 7월 헬싱키에서 첫본회담을 개최했다. 1975.8.1 35개국의 원수·행정수반이 참석해 동등한주권인정·무력사용과위협중단·영토불가침등 10개항의 <헬싱키협정(유럽안보의기초와국가간관계원칙에관한일반적인선언)>에 서명했다. 1986 군사적신뢰를 위한 감시·검증장치를 포함하는 스톡홀름협약을 마련하고 1990.11 유럽재래식전력감축협상(CFE)을 타결하는대로 이어졌다. 1995 OSCE(유럽안보협력기구)가 출범했다. OSCE는 현재 러시아와 미국을 포함한 유럽·중앙아시아·북미57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최대안보기구로, 선거및인권상황감시·소수민족보호·분쟁예방및중재역할을 한다고 밝히고있다. 2022.2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에 대해 OSCE의 <안보불가분성>원칙을 훼손하는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반대했다. 안보불가분성원칙이란 다른 국가의 안보를 희생해서 자국의 안보를 추구해선 안된다는 원칙이다. OSCE의 이런 원칙은 우크라이나전을 막지못했다. 미국은 CSCE에서 군사적신뢰조치를 먼저 합의하고 이를 인권문제와 연계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인권문제에 대해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국가들은 국내문제의 불간섭원칙에 위배된다고 비난했다. 1985.11 레이건과 고르바쵸프의 회담에서 양국은 상호수용가능한 CBMs(신뢰구축조치) 또는 CSBMs(신뢰안보구축조치) 마련과 무력불사용원칙을 주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레이건은 스톡홀름에서의 군사안보분야에서의 진전은 이후 시작되는 빈회의의 <인권과기본권>논의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헬싱키협정은 <냉전>체제의 군사동맹을 끝내기 위해 시작됐지만 나토는 해체되지않았고 소련이 없어진 자리에 미국중심의 단극화와 패권주의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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