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영화는예술>이라는 이치를 깨닫게 해준 영화가 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가 준 감명은 그곳이 감옥이어서 보다 증폭됐을수 있다. 그때 받은 문화적충격은 영화속 주인공에게 악상이 떠올랐을때의 그것과 다르지않았다. 3색연작,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이작품들의 주연들이 삶을 이야기하듯 당시와 작품을 회고하는 영상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키에슬로프스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정말로 안타까워했던 당시의 심정도 되살아났다.
파리 한복판 시떼섬의 최고재판소계단을 지날때면, 특히 국제민주법률가협회의 상징인 베이선생을 만날때면 어김없이 <블루>·<화이트>·<레드>에 나오는 비노쉬·델피·야곱의 인상적인 이미지들이 스쳐간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생전에 이재판소에서 이들이 서로를 모른채 만나는걸 관객을 위해 의도했다고 언급했다. 우연속에 비낀 필연의 인연에 대해서 이만큼 명징하게 그려낸 작품이 또있을까싶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애쓰는 할머니를 대하는데서도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인성을 발휘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의 구출장면에서 충격적인 사건선과 절제된 감정선이 절정으로 교차하며 영원히 잊을수 없게 만든다.
타르코프스키와 키에슬로프스키는 각각 소련과 폴란드 사람이다. 사회주의가 건재하던 시절,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연출가들이지만 사상적으로 단단하지못했다. 그래서 서구의 모더니즘국제영화제들의 초청을 받았고 동구를 향한 이념적공세에 교묘히 이용당했다. 그래도 서구의 어떤 연출가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것을 간과하지말아야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변증법이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사회의 저력이 어디 가지않는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키에슬로프스키는 프랑스혁명200주년기념작을 만들어달라는 의뢰와 함께 곧 출범할 유럽연합의 미래도 함께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시대를 통찰하는 지성과 순수한 인간의 양심을 가진 키에슬로프스키, 유럽연합을 상징하는 배를 마지막편 <레드>에서 침몰시켜버린다. 처음부터 그럴 뜻이었다. 이 놀라운 발상과 소신에 지금도 전율이 흐른다. 그결과 각각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블루>, <화이트>와 달리 <레드>는 정작 주최측인 깐느국제영화제에서 무관의 버림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세상은 지금 <브렉시트>와 <우크라이나전>을 경험하며 유럽연합의 몰락을 예견한 거장의 미친 감수성에 경탄의 박수를 보내고있다. 빛과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더욱 감명깊은 이야기의 힘, 인간과 생활을 깊이 연구한 예술가의 철학적고뇌는 영화를 보고 또 봐도 또 보고싶게 만든다. <헤어질결심>, 깐느의 찬사를 받았지만 박찬욱도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부인하지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