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 항쟁의기관차〉 전쟁의 광기에 맞선 조·중·러반미반제전선

사회주의국가인 조선과 중국, 사회주의유산국으로서 러시아 역시 오랜기간 미국의 침략적인 제국주의패권질서에 반대해 왔다. 조선은 일제에서 해방된뒤부터 줄곧 미제에 대항해 싸웠다. 1950~53 <조국해방전쟁>에서 미국과 16개국을 상대로 직접 전투를 치렀으며 정전협정이후로는 북남의 평화적통일을 통해 미군철거를 이뤄내려고 노력해왔다. 한편으로 미제의 군사적침략기도에 맞선 군사력강화도 계속 진행했다. 소련의 쿠바미사일위기를 계기로 <경제국방건설병진노선>을 공식화했으며 이를 위해 인민경제개발7개년계획도 3년연장했다. 1960년대는 베트남전이 벌어지던 시기로 코리아반도에도 전운이 깊게 감도는 시기였다. <한국>에 4.19항쟁정국이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군부세력에 의해 전복되고 코리아반도에 대결과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것이 예견되던 시기, 1961.7 조선은 소련·중국과 각각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쿠바미사일위기로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실각하게 됐지만 조선은 푸에블로호나포사건이나 판문점미루나무사건등에서 원칙적입장을 견지하며 미제의 사과를 받아냈다. 미제는 베트남전의 패배로 더이상의 전쟁을 벌이기 어려워지고 3세계 신생독립국가들의 장성에 따라 국제외교무대에서 미국의 침략책동에 대한 항거가 보다 강력하게 전개됐다. 전망은 결코 어둡지않았으나 중국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의 실패에 따른 곡절과 소련사회주의의 <평화적이행>·<평화적공존>이라는 수정주의와 다른 한편의 관료주의는 반제진영의 단결과 투쟁을 약화시키고 반제투쟁의 폭발적진출을 제약했다. 중국은 경제건설의 과업을 진행하면서도 대만과의 관계에서 영토완정과제가 계속 제기됐다. 2차양안위기때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핵위협을 당하면서 핵무장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원자탄(1964)·수소탄(1967)과 인공위성(1970), ICBM(1981 DF5실전배치)의 개발로 <양탄일성(兩彈一星)>을 완성했다. 서방과의 관계개선분위기에 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홍콩·마카오도 반환받았으나 한편으로 천안문사태(1989)와 2000년대 홍콩사태, 대만과의 관계를 이용하는 제국주의세력의 내부분열책동은 지속됐다. 1990년대 당면한 경제건설문제가 시급하게 제기됐으나 미국과 중러사이의 모순은 잠재돼있었다. 무엇보다 제국주의미국이 중·러를 포용할 계획이 없었다. 제국주의·자본주의진영은 그들의 광적인 탐욕을 실현하기 위해 거대한 인구와 영토, 자원을 가진 중러를 집어삼키고, <냉전>을 통해 소련을 붕괴시켰듯이 <신냉전>을 통해 잠재적위협세력을 없애려고 획책하고있다. 러시아의 경우, 미국이 나토를 앞세워 동쪽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미국은 푸틴의 나토가입제안을 거부함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침략적기도를 드러냈다. 조선은 오랜 미군의 핵위협에 시달리다가 소련이 붕괴하자 <선군정치>를 선언하고 경제핵무력건설병진노선을 관철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미일극체제의 광기에 맞서 군사력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2018 조선이 선제적인 외교전으로 조중·조러간의 전략전술적협동관계를 강화했다. 2019.6 시진핑의 조선방문과 2024.6 푸틴의 조선방문은 중요한 계기로 됐다. 푸틴의 조선방문에서 조러사이에 <포괄적인전략적동반자관계에대한조약>을 체결하고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게 될경우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있는 온갖수단으로써 군사적및기타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김정은위원장은 동맹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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