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항쟁의기관차〉 라민아르판상고르에게 바치는 헌사

포데 홀렁 디안(Fodé Roland Diagne) | 페르녕(Ferñent)편집장 세네갈 

⋯ 그(라민아르판상고르)는 1920년대에 볼셰비키화를 진행중이던 공동주의당에 입당했다. 식민지노동자연합(Union Inter-coloniale 식민지노동자들을 위해 국제공동주의연맹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조직)의 활동가였던 그는 프랑스제국주의식민주의의 협력자인 블레즈디아뉴의원을 비난하고 그가면을 벗기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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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앙리바르뷔스가 이끄는 식민지연합은 프랑스식민지출신퇴역군인들을 대상으로 반식민주의와 반군사주의선전을 펼치고있었다.

1926 라민아르판상고르는 프랑스내 모든 흑인(서인도제도출신과아프리카인)을 하나로 모으는 <CDRN(흑인종족방위위원회)>를 설립했다.

당시 프랑스에 거주하던 흑인들은 가난과 불의에 시달리고있었다. 예를 들어 <…백인참전연금수급자의연간수입은1만5390프랑인반면…흑인동지의연간수입은1800프랑에불과했다>고한다.

CDRN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내용은 <우리는흑인이전세계에서더인간적인대우를받기를원한다!우리는더이상우리의자매와형제들이유럽병원에서무시당하며죽는것을원하지않는다.우리는그들이외국에서와마찬가지로서로연대하기를원한다.우리는더이상흑인들이거래와인신매매의대상이되는것을원하지않는다.…우리는…전세계어디에서나흑인들에게행해지는불의를전세계에고발할수있는신문을파리에만들기를원한다.…>고 밝혔다.

신문 <라보아데네그레>를 창간한후, CDRN은 지역에 섹션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라민아르판상고르는 최악의 어려움과 경찰의 괴롭힘속에서도 막세이, 보흐도, 르아브흐, 드하귀녕에 지부를 설립하기 위해 건강상태와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했다.

1926.11.30 뤼마니떼는 CDRN에서 공동주의인터내셔널(CI)의 확대집행위원회에 보낸 전보를 발표했다. 이전보에서 CDRN은 레닌을 영구명예회장으로 선출한다고 밝혔다. 라민아르판상고르가 레닌이 사망하기전 레닌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1925 다카르와 생루이에서 파업이 일어났을때 세네갈에서 철도노동자와 선원에게 배포되는 신문 <라보아데네그레>가 창간되는등 CDRN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1927.2 라민아르판상고르와 티에모코가랑쿠야테는 브뤼셀 반제국주의회의에 참가했다. 쿠바의 트리컨티넨탈에서 아밀까르까브랄의 뒤를 이어 특히 프랑스식민주의에 반대하는 반제국주의투쟁의 저명한 대변인중 1명이었던 그는 <당신이자본주의라고부르는것은아프리카의식민주의>라고 선언했다.

그는 짧은 생애동안 프랑스의 제국주의대도시에 거주하는 5000여명의 아프리카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1942 마우트하우젠수용소에 수감돼 살해될때까지 아프리카현지에 전투조직과 단체를 설립하는등 조직활동을 확장했다.(이작업은 그의 공동주의자분신 티에모코가랑쿠야테가 이어받아 1942 그가 살해당할때까지 실행됐다) 병으로 지친 라민아르판상고르는 1927.11.25 프레주에서 사망했다.

서구제국주의의 쇠퇴와 다극적반패권주의세계의 도래라는 맥락에서 아프리카에서 진행중인 민족해방의 2번째단계에서 라민아르판상고르와 티에모코가랑쿠야테의 발자취를 따르는것은 현세대의 범아프리카반제국주의투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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