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내란·반란계획은 최소1년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됐다. 2023.12 윤석열은 여인형전방첩사령관과 김용현전대통령경호처장을 불러 <계엄밖에없지않냐>고 언급하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2024.3 김용현은 여인형과 곽종근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수도방위사령관등을 불러 회동했다. 4인은 12.3반란의 핵심주동자로 현재 체포·구속돼있다. 윤석열정부에서 충암고출신들이 계엄관련 군·정부요직을 차지하면서 <충암파>논란이 계속 있었는데, 실제 상당수가 이번 내란·반란사태에 가담했다. 김용현·이상민·여인형이 대표적이고 계엄나흘전인 11.29 방첩사기획관리실장으로 임명된 박성하와 대통령실경호담당 황세영101경비단장이 뒤늦게 충암고로 알려졌다. 방첩사신원보안실산하 신원조사과장·신원검증과장을 연이어 맡은 진00육군제5군단방첩부대장(대령) 역시 충암고출신이며, 3월 이상민이 방첩사를 비공개방문했을때 여인형과 함께 만찬자리에 참석한것으로 알려졌다. 진대령이 소속됐던 방첩사신원보안실은 특히 계엄포고령작성과 관련해 내란에 가담한 부서다. 미<한>합동군사연습이 진행되던 3월 작전명<충성8000>훈련이 2주간 집중적으로 실시되며 준비는 본격화됐다. 여인형이 지시했고 인원까지 보강하며 작전단계별로 점검하고 직접 사열까지 했다. 김현태707특수임무단장은 직속상관인 곽종근과 <서울지역동시다발테러에대한많은대화>를 연초부터 나눴고, 4~5월 처음으로 헬리콥터를 여의도근처 한강 노들섬에 전개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최정예부대인 707특임대를 국회장악에 활용하기 위해 미리 준비시킨 정황이다. 선관위장악모의도 다방면적으로 이뤄졌다. 12.3 선관위장악을 지시한 장본인인 여인형은 5~6월 비서실장이던 정성우에게 선관위관련 현안보고를 수차례 요구했고, 극우유튜버들의 주장도 정리해 보고하도록 했다. 계엄당시 1처장으로 자리를 옮긴 정성우에게 <선관위서버를복사하거나통째로들고나오라>고 지시했으나 정성우는 법무실검토뒤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행하지않았다. 11월에는 노상원전정보사령관이 민간인신분으로 정보사 정성욱대령에게 부정선거관련영상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고, 11.22 문상호정보사령관이 노상원지시로 공작을 잘할 인원 15명정도를 선발하도록 했다. 노상원은 박근혜<정권>시절 정보사령관을 지냈고 김용현의 육사후배이자 계엄포고령작성등 현내란·반란사태의 핵심이다. 12.1 노상원은 문상호와 함께 정성욱대령, 김용군대령을 안산 상록수역부근 롯데리아에서 만나 <부정선거>를 언급하며 선관위전산실로 갈것을 지시했고 인원선발여부까지 구체적으로 점검했다. 김용현은 같은날 곽종근에게 <반국가세력척결>을 언급하며 계엄관련업무지시를 하달했다. 국회·선관위관련3곳·여론조사<꽃>·민주당당사등을 확보하는 내용인데 비슷한 내용의 지시를 윤석열이 직접 조지호경찰청장과 김봉식서울경찰청장에게 전달했다. 전날인 12.2 707특임대의 모든 훈련이 취소되고 비상대기명령이 떨어졌다. 계엄군에게 실탄이 지급됐고 사복암살조가 비밀리에 조직됐다. 10여명의 체포명단이 존재했으며 수방사B1벙커에 수감하려 계획했다. 반란세력은 유혈사태까지 고려해 수도권소재 일부 군병원에서 환자수폭증을 대비한 환자전시분류작업훈련을 실시했고 계엄당일 계엄군투입과 함께 구급차를 출동시켰다. 아직까지도 계엄이후 진행하려했던 대북도발과 대남군사작전들이 계속 폭로되고있다. 치밀하게 준비됐지만 무모하게 감행됐고 결국 <서울의광주화>를 막기 위한 우리민중의 영웅적투쟁에 의해 가로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