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 항쟁의기관차〉 윤석열의 계엄선포, 내란의 시작

2024.12.1 김용현국방장관은 곽종근육군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선관위3곳·민주당사·여론조사꽃등6곳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여인형방첩사령관은 부대간부들에게 북의 도발가능성이 있다며 <지시대기하라>고 하달했다. 노상원전정보사령관은 이날 <롯데리아회동>에서 문상호정보사령관등을 만나 계엄을 준비했다. 12.3 오전 김용현은 문상호에게 <야간에임무를줄수있으니1개팀이대기하라>고 지시했다. 19시20분경 윤석열은 삼청동안가에서 직접 조지호경찰청장과 김봉식서울경찰청장에게 비상계엄선포시 국회통제를 지시했다. 이어 국무회의가 소집돼 20시30분경 국무위원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국무회의정족수11명이 모인 시각은 22시17분이었다. 윤석열이 <계엄을선포할수밖에없다>고 말한뒤 나간 시간은 22시22분이고 22시25분경 비상계엄담화를 발표했다. 국무회의는 사실상 5분밖에 진행되지않았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내란을 실제 실행한 김용현을 포함해 국무위원11명중 한덕수등7명은 공개적으로 계엄에 찬성하지않았다고 밝혔다. 22시30분경 김용현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해 계엄에 대해 지시했고 윤석열은 계엄담화발표이후 한덕수·최상목·이상민·조태열·조지호등에게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담긴 문건을 전달했다. 2025.1.23 탄핵심판변론에서 김용현은 국무위원들이 부서(서명)를 했느냐는 질문에 부서하지않았다고 답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절차를 무시하고 국회심의에 넘기지않고 박안수계엄사령관을 임명했다. 박안수는 23시25분경 윤석열·김용현이 준비한 포고령1호를 발포했다. 윤석열은 그포고령에 기초해 국회통제를 강제하려고했다. 23시50분경 특전사병력이 헬기로 국회에 도착했다. 선관위는 이미 22시45분경부터 계엄군이 장악했다. 계엄담화와 함께 방첩사의 체포조활동도 개시됐다. 여인형이 체포대상들에 대한 위치추적을 요청했고 윤석열은 홍장원정보원1차장에게 연락해 방첩사를 지원할것을 지시했다. 12.4 01시경 국회비상계엄해제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윤석열은 그뒤에도 이진우수방사령관에게 전화해 <국회의원이190명들어왔다는데실제로190명이들어왔다는것은확인도안되는거고>·<그러니까내가계엄선포되기전에병력을움직여야한다고했는데다들반대해서>·<해제됐다하더라도내가2번,3번계엄령선포하면되는거니까계속진행해>라고 지시했다. 수방사의 <수호신TF>가 한강공원CCTV에, 비슷한 시간 9공수여단의 2만7000발의 탄약을 실은 차량이 서울시내 도로CCTV에 잡혔다. 9공수여단장은 목적지에 대해 선관위로 가려했다고 하다가 여론조사꽃으로 가려던것이라고 했다. 실제 여론조사꽃건물근처에서 이차량의 위치가 확인됐다. 9공수여단장은 국회는 아니라고 답변했으나 박선원민주당의원은 국회로 추가투입된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의 결의안해제를 무력화시키고 계엄에 이은 2차내란을 획책한것이다. 윤석열은 04시30분경에야 국무회의에서 계엄해제를 의결했다. 12.7 탄핵소추안이 추진됐지만 윤석열이 대국민담화로 <매우송구스럽게생각한다>며 <임기를포함해앞으로의정국안정방안은우리당에일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민당(국민의힘)의원들이 탄핵에 반대해 소추안은 통과되지못했다. 12.12 윤석열이 대국민담화로 내란을 선동했다. 이날 셔먼미하원의원의 방송인터뷰가 진행됐고 12.13 방송인 김어준이 <체포조아닌암살조>계획이었다고 폭로했다. 이런 격돌속에 12.14 탄핵소추안이 통과했다. 한편 12.24 청주공항·사드기지폭파등의 임무를 가진 HID요원30여명이 아직 대기중이라는 제보가 공개됐고 12.26 김용현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제보된 김용현측변호인단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직무정지될때 윤석열이 <2주만버텨라>고 한 기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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