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 항쟁의기관차〉 유일한 평화통일방안인 연방제

코리아의 분단은 외세에 의해 이뤄진것으로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분단되지않았을것이다. 1948.4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던 김구·김규식등은 이런 입장에 함께한 대표적인 남측출신정치인들이다. 외세의 개입을 없애면 분단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것이라고 봤다. 다른 편으로, 우리민족이 하나로 단결해 힘을 모으면 외세의 개입을 없애고 하나된 우리나라를 세울수 있다고 봤다. 이런 입장에서 1953 정전이후 북은 일관되게 평화통일을 주장했다. 김일성주석은 1960 남에 4.19정국이 펼쳐졌을때 연방제방식의 통일제안도 했다. 1961.5.5 서울에서는 <가자!북으로,오라!남으로,만나자!판문점에서>라는 구호를 들고 전국17개대학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결성준비대회>가 개최돼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남북학생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박정희군사쿠데타에 의해 이런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북은 상층통일전선이 하층통일전선을 추동할수 있다고 봤다. 1972 북남회담이 성사되고 7.4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됐다. 그러나 박정희파쇼정권은 미국의 <두개의코리아>정책을 추종했고 1973 유엔동시가입을 추진했다. 1979 박정희군사파쇼정권이 끝장나고 1980.5 전두환군사파쇼정권이 집권했다. 북은 이해 조선노동당6차대회를 개최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시했다. 1987 6월항쟁이후 남이 <민주화>되면서 북은 적극적으로 하층통일전선사업을 펼치며 범민족대회를 성사시켰다. 남정부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군사파쇼정권의 후예들은 통일운동을 반정권운동탄압대상으로 만들었다. 2016 조선노동당7차대회에서 <조국의자주적평화통일>을 <조국의자주적통일>로 바꿨다. 당시 김정은위원장은, 연방제통일은 평화통일 즉, 평화적방법으로의 통일이라고 설명하면서 연방제를 반대하는 남정부를 강력하고 예리하게 비판했다. 김정은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은<제도통일>의허황한꿈을버리고내외에천명한대로연방제방식의통일실현에로방향전환을하여야합니다.만일남조선당국이천만부당한<제도통일>을고집하면서끝끝내전쟁의길을택한다면우리는정의의통일대전으로반통일세력을무자비하게쓸어버릴것이며겨레의숙원인조국통일의역사적위업을성취할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연방제통일을 주장한 이유가 평화통일에 있다는 점이 재천명됐다. 2021 8차대회에서는 당규에 <조선노동당은미제의침략무력을철거시키고남조선에대한미국의정치군사적지배를종국적으로청산하며온갖외세의간섭을철저히배격하고강력한국방력으로근원적인군사적위협들을제압하여조선반도의안전과평화적환경을수호하며민족자주의기치,민족대단결의기치를높이들고조국의평화통일을앞당기고민족의공동번영을이룩하기위하여투쟁한다>고 밝히며 침략무력의 철거를 전제로 평화적인 통일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