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총선에서 국민당이 108석을 얻었다. 21대총선의 103석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었으나 <대한민국>헌정사상 집권여당으로서 유례가 없는 결과다. 4.11 한동훈국민당비상대책위원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총선을 진두지휘했으니 1차적인 책임론을 피할수 없고 차기대권주자로서의 입지도 타격이 불가피할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선거전 국민당은 한동훈을 중심으로 <시스템공천>을 도입해 <동일지역구3선이상패널티>등 규정을 내세웠다. <윤심공천>·<현역불패>등 비판을 막을수 없었다. 공천작업막바지에는 장예찬·도태우후보의 공천을 취소하는등 잡음이 일었다. 당안팎에서는 이번 총선참패의 핵심이유로 한동훈의 전략적실패를 꼽는다. 집권여당으로써 정책이나 비전제시보다 <이·조심판(이재명·조국심판)>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결과적으로 <야권의정권심판프레임>을 더욱 강화시켰다는것이다.
공식선거운동기간 돌입후 한동훈은 하루에 10여개이상의 지원유세일정을 진행했다. 당내에서는 각지역후보보다 개인의 대권행보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홍준표대구시장은 개표직후 총선기간 여당의 선거운동중 기억에 남는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며 <한동훈이동원된당원들앞에서셀카찍던것뿐>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국민당은 3.29 <이조심판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이재명민주당대표와 조국조국혁신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부각하는 행보를 연일 이어갔다. 이과정에서 검사티를 벗지못한 한동훈이 타깃을 정해놓고 정치가 아닌 수사를 하고있다는 신랄한 평도 나왔다. 한편 첫날부터 <정치를개같이하는사람이문제>라고 발언하고 이후에도 <쓰레기>·<일베>·<히틀러>등 극단적인 표현을 총동원하며 막말논란을 자초했다.
선거기간 한동훈은 자신이 <헌법가치를훼손·유린했다>며 징역30년을 구형했던 박근혜를 찾았다. 박근혜탄핵사건에 변호를 맡았던 도태우가 광주민중항쟁폄훼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된것에 반발하는 강성지지층을 달래려는 행보였다. 3.26 박성준더불어민주당대변인은 <자신이직접국정농단수사를해서단죄했던박전대통령을찾아가,선거를도와달라고읍소하는대통령과여당대표를보고있으니정말한심하다>며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내세우던 사법정의와 수사도 쓰레기통에 내버리는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민심과 괴리된채 강성지지자만 바라보는 <명분없는정치>라는 지적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국민당은 <낙동강벨트>에서 선전했지만 <한강벨트>·<반도체벨트>에서 참패했다. 중도층공략에 완전히 실패한것이다.
<용산발악재>도 한몫했다. 의대정원확대문제·이종섭<호주런>·<황상무회칼발언>등 여권에 악재가 될수 있는 이슈들이 용산에서 쏟아져나왔다. 여기에 물가상승등 경기악화에 윤석열의 <대파875원>발언이 화를 불렀다. 총선기간 국민당선대위원회관계자가 <용산발리스크>가 터지면서 정권심판론을 막지못했다는 절망섞인 평을 내놓을 정도다. 경기도의 한의원은 <총선을좌우할핵폭탄에어떻게대응하느냐에따라민심이변할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사건이 벌어진뒤 대통령실이 이슈를 키우다 당과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 수습하는 모습이 반복됐다고 보도했다. 여권고위관계자는 <윤대통령에게직언할수있는레드팀신설이시급한상황>이라며 단순 직급을 기준에 두고 인적쇄신을 하기보단 참모들의 옥석을 가려 솎아내는 물갈이가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후 이같은 문제들이 반복됐지만 윤석열정부는 이를 수습할 능력을 한번도 보여주지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