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군사파시스트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2012.12.19 새누리당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51.63%로 당선됐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은 48.02%를 득표했다. 박근혜당선의 이면에는 정보원(<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보기관들과 수만건의 댓글공작이 있었다. 당선이후 박근혜<정부>는 파쇼정책들을 강화하며 <RO(혁명조직)사건>조작과 급기야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했다. 이런폭정과정에 <태블릿>건이 터지면서 <최순실배후설>에 민중들은 분노했다. 당시 국회는 최서원(개명전최순실)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사건과 관련해 <박근혜정부의최순실등민간인에의한국정농단의혹사건진상규명을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청문회, 현장조사, 긴급현안질문등을 실시했다. 2016.4.13 20대총선은 19대대선을 앞둔 박근혜<정부>의 마지막 평가전이었으며 박근혜<대통령>탄핵 11개월전에 치러졌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1야당인 민주당(더불어민주당), 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분당한 안철수계인사들·호남계중진의원들·비주류인사들이 창당한 국민의당, 통합진보당에서 분당한 정의당등 심각한 야권분열속에 선거가 치러졌다. 이와중에 새누리당, 민주당은 공천파동등 내부갈등에 휩싸였고 이에 반발한 일부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렇게 치러진 20대총선은 반박근혜<정권>민심이 반영돼 국회의원정수300석(지역구253석 비례대표47석)중 민주당123석, 새누리당122석, 국민의당38석, 정의당6석, 무소속11석의 결과를 얻었다. 이는 17대총선(2004)에서 여대야소로 전환된 이후 12년만에 여소야대로 바뀌었다는 의미를 갖고있었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20석이상을 확보해 원내교섭단체지위를 얻었다. 총선에서 3당체제를 이룬것은 1996총선이후 20년만이다. 수구정당은 민심에 의해 심판된 이승만정권이나 박정희·전두환군사정권의 낡은 구시대적이미지를 마치 새로운것인양 되살려냈다. 비반복적반복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교활해졌고 그만큼 더 위험해졌다. 민심을 얻지못한 반민중정권들은 김대중·노무현의 개혁정권에서 이명박이라는 보수정권으로, 이명박정권에서 그당내 반대파출신인 박근혜<정권>으로 바뀌었으나 진정한 민중정권으로 나아가지못했다. 선거의 한계는 명백하다. 선거로는 민중이 주인된 정권을 세울수 없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상황에서 정의당이 진보정당을 대표했으나 국민의당에게 3당의 자리를 내줬다. 새누리당의 콘크리트지지층이라고 할수 있는 영남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심판했고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심판대에 오르며 호남맹주자리를 국민의당에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기존에 동서로 갈라져있던 양측 모두를 반으로 가르는 균열이 생겼다. 이는 개혁정권10년과 수구보수정권약10년에 대한 민심의 냉정한 평가였다. 진보정당은 약20년기간 자리를 잡지못하고 지리멸렬해졌다. 거기에는 진보정당에 대한 <종북>색깔공세와 음해모략이 있었다. 2016 20대총선이후 국회는 민심에 따라 2016.12.9 박근혜<대통령>탄핵소추안을 234명찬성으로 가결했다. 이후 2017.3.10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전원일치로 이를 인용해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파면됐다. 희대의 파시스트 박정희는 10월항쟁의 여파로 피살됐고 그의 딸 박근혜는 민중의 거대한 촛불항쟁으로 심판받아 탄핵·구속의 길을 걷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