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 항쟁의기관차〉 코리아의 분단과 열전, 건당·건국·건군

코리아는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앞두고 미국의 대소견제정책으로 38°선이 그어지며 분단됐다. 이는 제국주의 미국의 사회주의 소련에 대한 적대시정책의 산물이다. 1947.3 <트루먼주의>를 발표하고 대소봉쇄전략의 <냉전>을 선언하면서 그리스내전에 개입정책을 실시했다. 이어 2차세계대전으로 타격을 입은 서유럽에 경제적지원을 명목으로 <마샬계획>을 도입하고 이지역에 미국의 경제적패권을 차지했다. 코리아38°선이북지역에는 노동계급의 혁명적당이 권력을 쥐고 일제잔재·봉건잔재를 청산하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추진했다. 미국은 코리아38°선이남에 미군정을 세우고 소련사회주의의 확장을 견제했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미군정치하에서 38°선이남을 전초기지로 군사기지화하고 친미정권수립을 획책했다. 일본에 떨어진 미국원자탄의 위력으로 일본은 독일처럼 분할점령되는것을 피했다. 이후 미국은 일본의 군국주의세력을 빠르게 부활시켰다. 미국은 유럽에서 1949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조직했고 1955 전범국인 서독까지 이군사동맹에 가입시키자 소련은 바르샤바조약기구(WTO)로 대응했다. <냉전>의 2개 진영이 형성됐다. 여기에 미국은 남코리아를 군사기지화하고 일본을 병참기지화하면서 전쟁을 준비했다. 김일성주석은 일제패망이후 복잡한 국제정세속에 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 건당·건국·건군3대과업을 제시하고 이를 빠르게 추진했다. 김일성주석은 미국에 대해 19세기말부터 우리나라에 침략의 마수를 뻗쳐왔으며 가쓰라·태프트비밀협약을 체결하고 일제의 조선강점을 도와줬다면서 외래제국주의자들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보위할수 있는 강력한 민족군대를 창건할것을 지체할수 없는 절박한 과업으로 제기하고있다고 강조했다. 김일성주석은 38°선이북의 인민정권을 기반으로 건군사업에 박차를 가해 1948.2.8 조선인민군을 창건했다. 이승만이 남단독이라도 정부를 수립해야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미국이 유엔으로 코리아문제를 넘기면서 결국 이남지역의 단독정부가 수립됐다. 이승만·김성수세력을 제외한 김구·김규식을 비롯한 대다수의 우리민족성원들은 외세의 개입 없이 단일정부를 수립해야한다고 요구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남북연석회의가 성사되고 1948.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남에서 단일국가·단일정부를 위해 무장투쟁을 벌였던 이들은 미군정에 의해 수립된 이승만단독정부에 의해 불법화되고 학살당했다. 2개의 정부가 수립된 상황에서 전쟁이 점점 가시화됐다. 이승만은 장개석과 함께 <아시아판나토>라고 할 <태평양동맹>을 주창하며 돌아쳤다. 1949 중국국내전쟁에서 장개석군대가 패배하고 대만으로 쫓겨나 <대만위기설>까지 나도는 상황이었고 1950.6.18 덜레스미국무장관고문이 38°선을 시찰했다. 그1주일만에 코리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결과 미국의 북침전쟁, 이승만의 <승공통일>은 좌절됐지만 군사분계선이남지역에서는 반북반공파쇼화가 더욱 심화됐고 분단은 고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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