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 항쟁의기관차〉 〈블랙페앙〉 통일과 투쟁

사에키교수는 최신의 의료도 외과의의 실력도 모두 한계가 있다며 생명앞에서 의사는 겸손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미래의많은환자들을구할최신연구,눈앞에서괴로워하는환자를구할수있는최고의실력,이어느하나도빠져서는안됩니다>는 자신의 꿈을 피력한다. 극을 관통하는 연구위주의 진영과 실력위주의 진영, 두진영간의 갈등이 하나로 통합돼 해소되는 순간, 블랙페앙의 비밀이 밝혀진다. 사건조직과 감정조직이 동반상승하며 갈등이 고조되다가 절정에서 터뜨리며 정화되는 매우 고전적인 드라마다. 휴머니즘의 기초와 변증법적 투쟁과 통일의 과정이 극성을 담보하는 동력이고 비결이다. 다만 매회 문제해결의 상투적인 반복과 군국주의전통을 상기시키는 어투와 무리행동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것은 어쩔수 없어 보인다.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에서 권력에서 배제될수밖에 없는 공동주의자들이 진출한 분야중 하나인 의료계를 그린 드라마는 일본드라마 특유의 광기와 엽기가 덜해 그나마 볼만하다. 허나 이런 수준으로 이미 K드라마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세계인들을 상대로 선전하기는 힘들듯싶다. <한국>에 밀린 일본의 드라마가 다시 부흥하기 쉽지않은 여러가지 이유중 하나는 <한국>의 힘이 조선의 힘과 관련있어서다. 돈중심의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중심의 사회주의가 가진 건전한 힘이 알게 모르게 같은 민족속에 깊이 작용해 <한국>의 문화를 세계정상에 올려놓았다. 일본에는 이런 힘이 소련·동구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대이후 급격히 사라지고 노장들마저 세상을 떠나고보니 더이상 희망이 없게 됐다.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두진영간의 모순이 모두 이처럼 통일의 방식으로 해소되는것은 아니다. 적대적모순은 비적대적모순과 해결의 방식이 전혀 다르다. 누가 누구를 하는 적대적관계는 비적대적관계처럼 대화와 통합으로가 아니라 투쟁과 청산으로만 해소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간의 민족모순,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계급모순이 그렇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우리민중은 무장투쟁으로, 재벌의 착취에 맞서 우리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맞서 싸워야했다. 파쇼진영과 반파쇼진영간의 모순도 마찬가지다. 2차세계대전에서 반파쇼진영은 파쇼진영을 격멸하며 승리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반파쇼민주세력이 군사파쇼무리를 완전히 청산하지못해 이후 그잔당들의 재집권을 허용해야했다.

우크라이나전장에서 러시아와 나토만이 아니라 서아시아에서 이란등의 <저항의축>과 이스라엘시오니즘간의 대결전도 타협방식으로 끝날수 없다. 이미 <민스크협정>과 <오슬로협정>이 제국주의의 기만책에 불과했다는 진실을 민중들이 뼈속깊이 체험해서다. 우크라이나전은 파쇼무리가 격멸되고 나토를 패퇴시켜야, 서아시아전은 이스라엘시오니즘이 정리돼야 끝난다. 젤렌스키든 네타냐후든 제국주의의 주구들이고 희대의 파시스트들로 낙인된 미치광이들, 인간추물들이다. 이들의 배후에서 전쟁을 모의하고 확대해온 나토의 핵심정치인들은 모두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실각하거나 실각직전에 있다. 의사에게 환자를 살리는것이 전부이듯 정치인들에게는 민중의 뜻을 받드는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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