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은 누구인가. 적을 정확히 아는것이 절반이다. <친구는가까이,적은더가까이>의 의미도 다른데 있지않다. 적으로부터 치명적일뻔한 공격을 받았다. 결정적반격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적이 누군지 알아야한다. 현상만 봐서는 알수가 없다. 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이 있어야한다. 배후를 모르면 이길수 없다. 배후의 진짜적까지 파악한후 동시에 벼락처럼 응징한다. 대신 불법의 뫼비우스띠에서 벗어나지못한다. 가장 사랑하는 딸도 잃는다.
반동의 상징은 폭력이다. 제국주의든 파쇼든 폭력으로 지배한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불의의 폭력에 당연히 정의의 투쟁이 맞선다. 억압에 저항이 맞선다. 인류역사내내 이 반동의 폭력에 민중의 투쟁이 맞서왔다. 역사발전은 언제나 반동과의 계급투쟁을 동반했다. 민중의 자주성은 반동과의 준엄한 투쟁을 통해 실현됐다. 좋은 세상은 저절로 이뤄지지않는다. 민중의 주동적이고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민중중심의 사회를 앞당길수 있었다.
<한국>은 미제의 철저한 식민지다. 이땅은 1945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국에 의해 반공의 전초기지,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전락했다. 1948내전, 1949국지전, 1950전쟁의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제를 수괴로 하는 제국주의는 <냉전>책략을 관철하는데서 코리아전을 이용했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이땅에 내전·국지전·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있다. 윤석열의 <희한한구속취소>는 전쟁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제국주의는 파쇼주구를 키워 전쟁의 돌격대로 삼는다.
윤석열파쇼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진짜적은 그배후의 제국주의다. 반파쇼투쟁이 아니라 반제반파쇼투쟁으로 전화발전시켜야 <한국>사회의 변혁이 가능하다. 미제는 파쇼주구를 앞세워 반동적폭동을 준비중이다. 윤석열파쇼를 넘어 미제까지 봐야한다. 불의의 폭력에 맞선 정의의 투쟁이 절실하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중의 투쟁은 곡절을 딛고 결국 승리했다. 반동의 최후발악을 제압하고 민중의 새세상을 앞당긴다. 민중을 이길 자, 이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