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우리민족은 항일전쟁을 벌였다. 태평양전까지 일으킨 일제는 결국 패망했으나 미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목으로 코리아남단에 들어왔다. 제국주의미국은 점령군으로 들어와 우리민족의 주권회복과 완전한 독립을 위한 모든 활동을 불법화하고 탄압했다. 미군정은 건준·인민위원회활동을 불법화하고 상해임시정부도 부정했다. 미군정의 정치적탄압과 경제위기·민생파탄에 1946 9월총파업·10월항쟁이 일어났다. 초기 경북지역전체에서 32만명의 민중이 항쟁에 참여했으나 미군정의 탄압에 의해 군중수백명이 사망하고 7000여명이 검거됐다. 항쟁은 경남과 강원도·충청도·전라도, 코리아이남전역으로 번져갔다. 1947.3 트루먼미대통령은 미의회에 공산주의위협을 막겠다며 그리스·튀르키예에 대한 군사지원을 요청, 대소·대사회주의봉쇄정책인 <냉전>을 선언했다. 미국은 코리아이남을 점령하고 우리민족의 독립과 건국을 위한 활동은 철저히 막아놓은뒤 유엔개입을 통한 총선거를 강요했다. 코리아 이북의 북조선인민위원회와 이남의 김구·김규식등 광범한 당·단체·인사들은 남북연석회의를 열고 소·미양국군대의 동시철수와 총선에 의한 통일정부수립을 선언했다. 유엔에 의한 이남의 단독선거·단독정부수립을 반대했으나 결국 미국의 의도에 따라 이승만단독정부가 조작됐다. 미군은 이승만정부를 내세워 제주민중항쟁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제주민중항쟁을 억누르고 1948.12 이승만정부는 유엔에서 코리아에서의 유일합법정부로 인정받았으나 단일정부를 구성하고 조국의 통일독립을 염원했던 남의 민중세력은 이승만정부를 반대해 투쟁을 이어갔다. 이승만정부의 <토벌>작전도 계속되며 코리아이남은 내전상태에 놓였다. 한편 단선단정인 이승만정부수립을 반대해 남북전국총선거를 실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코리아이남에서는 미군정의 방해와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선거가 치뤄졌다. 명분이 없는 단선단정에다가 제주민중항쟁을 총칼로 억누르고 탄생한 이승만정부는 정권불안에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며 파쇼탄압을 앞세웠으며 장개석대만정부등과 함께 <태평양동맹>을 추진하며 호전적인 승공통일을 주창했다. 1948 제주·여순항쟁등 남지역내의 내전은 1949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간에 군사적긴장을 고조시키는 국지전으로 나아갔다. 1950 코리아전의 전면전이 발발했다. 이승만은 군권을 유엔군사령부, 사실상 미군에 넘겼다. 미국은 창설된지 얼마 안된 유엔을 내세워 코리아전에 자국포함 16개국을 비롯해 세계여러나라들을 끌어들였다. 유엔은 1975 유엔사해체를 의결했지만 1979 미<한>연합사를 창설하고 유엔사의 상당한 기능을 넘김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코리아반도에 대한 군사적개입이 본질이라는것을 드러냈다. 미제국주의의 군사적점령이 코리아에서 1948 내전, 1949 국지전, 1950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