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전후 미국의 금보유량이 현격히 줄어들고 달러패권이 흔들렸다. 1960 가을 달러위기가 표면화됐다. 경제위기와 함께 1960년대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책동도 심화됐다. 1959 미국의 코앞 쿠바에서 반미친사회주의혁명이 성공했다. 쿠바정권을 무너뜨리려고 미국은 각별히 노력했다. 1961.4 <피그만>침공은 실패했다. 1963.11 케네디미대통령이 암살되고 1964.8 기어코 <통킹만>사건을 조작하며 베트남전쟁을 개시했다. 1962 카리브해위기를 조성했는데 이는 튀르키예미사일배치와 쿠바미사일배치를 두고 일어난 소미대결전이었다. 이때 소련의 조치를 보면서 조선은 경제국방건설병진노선을 채택했다. 이를 위해 인민경제발전7개년계획을 3개년 더 연장해야했다. 코리아에서는 전쟁직후 미국과 이승만정부가 미군을 남코리아에 영구주둔시키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정전협정에서는 정전협정효력발생후 3개월내에 외국군철수와 코리아반도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을 소집하기로 했으나 이합의는 철저히 무시됐다. 이듬해 제네바회담에서 코리아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통일방안과 외국군철수문제가 의제에 올랐으나 19개국이 둘러앉아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못한채 폐막했다. 1954부터는 미<한>합동군사연습 <포커스렌즈>지휘소연습이 최초 실시됐고 1961 <독수리>연습이 시작돼 합동야외기동연습으로 확대됐다. 야외기동연습은 바로 전쟁으로 이어질수 있어 지역의 군사적긴장이 높아지게 된다. 1958.1 미국은 코리아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다. 5.1 포천·연천접경지역의 주<한>미군세인트바바라사격장에서 <어니스트존>미사일과 280㎜M65원자포의 시험발사가 진행됐다. 1968.1 미해군정찰함(간첩선)<푸에블로>호가 동해 원산항인근에서 활동하다가 조선인민군해군에 의해 나포됐다. 조선의 기준에서 <푸에블로>호는 조선의 영해를 1㎞침범했다. 조선은 미국에 조선영해침범을 시인하고, 조선에게 공식사죄하며, 재범하지않는다는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1968.2.8 세계최초핵추진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항모타격단을 원산항에서 24㎞ 떨어진 인접수역에 들이밀었다. 김일성주석은 <<보복>에는보복으로,전면전쟁에는전면전쟁으로대답할것>을 경고하고 대함미사일P15<테르미트>와 2단형지대공미사일S75<드비나>의 배치를 명령하며 대응했다. 조선은 1968.10 지대공미사일<번개>와 후에 대함미사일<금성>을 개발해 방어체계를 확립했다. 1960년대말 미국은 8종의 전술핵무기 약950발을 주<한>미군기지에 집중배치하고있었으나 이를 사용하지못했다. 1976.8 판문점미루나무사건당시에도 코리아반도의 전쟁위기가 고조됐다. 미항공모함<미드웨이>가 코리아반도해역으로, 오키나와미군기지에서는 전투기40대가 모인 2개전투단이 <한국>공군기지로 이동했다. F111전투기20대와 B52폭격기들도 미본토, 괌공군기지에서 코리아반도로 향했다. 군사위기가 고조되고 조선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조선은 경제국방건설병진노선으로 혁명무력을 준비하고 그전쟁억제력으로 코리아반도에서의 전면전을 막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