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 항쟁의기관차〉 고립주의에서 팽창주의로

1783 독립을 승인받은 미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가진 영국, 남쪽과 서쪽을 포위한 스페인, 동맹이었으나 잠재적위협이었던 프랑스사이에 끼어있는 처지였다. 초기 미국은 물리적군사력보다 지정학적이점과 외교적중립을 국가안보의 핵심가치로 삼았다. 초대대통령 워싱턴은 1796 고별사에서 유럽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상시적인 분쟁에 휘말리지말라는 <영구적동맹회피>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안보를 위한 대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단순히 문을 닫는 폐쇄주의가 아니라 국력이 약한 신생국이 강대국의 전쟁에 끌려가 국력을 소진시키는것을 막기 위한 철저한 실용주의적안보전략이었다. 이원칙은 100년 넘게 미국외교의 근간이 됐다. 1803 제퍼슨대통령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영토를 매입한다. 미시시피강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유럽열강이 북미대륙내부로 침투할 경로를 차단한 전략적완충지대확보였다. 이로써 미국은 서부로의 진출로를 여는 동시에 외부위협으로부터 본토를 보호할수 있게 됐다. 영국의 해상봉쇄와 미해군징집문제로 발발한 1812전쟁은 미국안보전략의 전환점이 된다. 워싱턴DC가 함락되고 백악관이 불타는 수모를 겪으며 미국은 상비군의 필요성과 연안방어체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전쟁이후 미국은 해군력을 증강하고 국경요새를 강화하며 자강중심안보체계를 구축한다. 국내산업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고 영국과 화친하려했던 연방당은 전쟁을 반대하다 몰락했다. 1823 먼로대통령이 선포한 <먼로독트린(먼로주의)>은 초기미국안보전략의 정점이었다. 유럽열강의 아메리카대륙에 대한 추가적식민지건설과 간섭을 거부하며 이를 미국에 대한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한것이다. 1829 집권한 잭슨은 이를 물리적으로 집행한 인물이다. 잭슨은 안보의 최대위협을 내부의 분열과 미개척지의 불확실성으로 봤다. 그는 1830 <인디언이주법>을 통해 동부 원주민을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강제이주시키며 내부적교전가능성을 제거하고 백인정착민중심의 영토적통합을 강행했다. 이는 1840년대 <명백한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팽창주의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미국이 북미대륙전체를 지배하는것이 신의 섭리라는 이신념은 텍사스합병과 멕시코전쟁(1846~48)을 정당화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은 태평양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외세가 넘볼수 없는 거대한 <대륙적완충지대>를 완성했다. 대륙평정이후 미국의 안보경계선은 대양으로 뻗어나갔다. 남북전쟁을 계기로 파편화된 연방이 통합된 산업국가로 거듭났다. 안보전략도 <방어적고립>에서 <대륙적패권>확립으로 이행한다. 19세기말 생산력의 증대는 새로운 시장과 해상로 확보를 요구했다. 미해군제독·전략지정학자 머핸은 <해양강국론>(1890)을 통해 해군력이 국가안보의 핵심임을 역설했다. 1898 매킨리행정부의 미국·스페인전쟁은 이러한 전략이 현실화된 변곡점이다. 전쟁결과 쿠바를 보호령화하고 필리핀·괌·푸에르토리코를 획득한 미국은 대륙국가를 넘어 제국으로 나아갔다. 이는 루스벨트의 <큰몽둥이(Big Stick)>정책에서 정점에 달했다. 그는 1904 <루스벨트코롤러리(추론)>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질서유지를 위해 미국이 직접 개입하는 <국제경찰력>행사를 선언하며 먼로독트린을 방어에서 개입으로 재정의했다. 파나마운하권을 확보해 양대양사이의 함대기동성을 극대화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워싱턴의 <회피>에서 잭슨과 팽창론자들의 <대륙요새화>, 그리고 루스벨트의 <해양지배>로 이어지는 철저한 힘의 논리에 기반했다. 이는 <도덕적명분>보다 자국의 이익과 지정학적완충력을 우선시했던 현실주의안보의 완성기였으며 오늘날 미패권의 역사적뿌리중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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