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1차세계대전막바지 윌슨미대통령은 <민주주의에안전한세계를만들기위한전쟁>·<모든전쟁을끝내기위한전쟁>이라며 참전했다. 사이크스피코협정등 영국·프랑스제국주의국가들의 비밀합의가 추진되는등 전후 더 많은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한 협상들이 은밀히 진행됐다. 미국은 <민족자결>·<국제연맹창설>등 14개평화원칙을 내세우며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상은 참전을 해야 발언권을 가질수 있다는 정치적판단에 의한것이었다. 1917.4 선전포고를 의회에 요청하기직전인 2.28 윌슨은 백악관에서 만난 민간지도자들에게 <전쟁에참여해야평화협상테이블에자리를차지하게될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2월혁명으로 독일동부전선의 전쟁상태가 종료될경우 독일이 서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할수 있었다. JP모건은 영프등연합국측에 15억달러이상의 전쟁차관을 주선하고 유럽교전국에 50억달러규모의 군수물자를 제공, 인수업무를 끝마쳤으나 그자금을 회수하지못할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었다. JP모건과 월가의 <머니트러스트>는 1907공황을 해결하는데 앞장서고 1913.12 미연준(Fed)설립까지 이뤄내면서 미정부에 대한 로비력을 자랑했다. 3.5 주영국미대사는 윌슨에게 밀서를 보내 JP모건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일개민간기관이 감당하기에는 상황이 엄청나다고 하면서 미국이 참전한다면 영프에 차관을 제공할수 있을것이고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1차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막대한 전쟁특수를 누렸다. 미국은 전쟁이전시기 채무국에서 전쟁이후 세계최대의 채권국이 됐고 미국의 은행과 군수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이윤을 취했다.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전운이 감돌던 1934~36 나이상원의원에 의해 미상원에서 추진된 군수산업특별위원회 <나이위원회>는 청문회를 통해 미국의 참전이유는 민주주의도 평화도 아닌 미국의 제국주의적영향력확대와 대기업의 이윤을 위한것이었음을 폭로했다. <나이보고서>는 JP모건·록펠러·듀폰등이 전쟁을 통해 얻은 이윤에 대해 밝혔다. 전후 윌슨은 실제 <민족자결>을 주창하면서도 러시아10월혁명직후 러시아에 미군을 투입하며 제국주의개입정책을 실시했다. 윌슨은 국제연맹창설로 전후 패권적지위를 도모하려했으나 미국민들은 1차세계대전이전까지 유럽에서 일어나는일에 무관심했고 미의회는 국제연맹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다. 1차세계대전에서의 독일패배로 건함경쟁은 영국·미국·일본간 태평양에서의 주도권싸움이 됐다. 1921~22 워싱턴해군군축회의는 물리적힘의 배분을 통해 잠재적적국을 통제하려한 최초의 다자간안보협정으로 이를 통해 일본의 주력함보유비율을 억제했다. 또 미·영·프·일4개국조약으로 태평양에서의 현상유지와 영일동맹폐기에 합의하고 1922 미·일·중등9개국조약체결로 중국의 문호개방과 일본의 중국내독점적권리를 부인했다. 미국은 건국이후100여년간 먼로독트린의 <고립주의>속에 서반구에서의 배타적영향력을 공고히 해왔다. 건국이래 계속돼온 미국의 확장정책은 이시기 세계무대에서 윌슨의 <이상주의외교>·<도덕적국제주의>로 치장됐다. 국가간협력, 군축, 그리고 <민족자결>로 대표되는 <윌슨주의>는 현대자유주의국제관계이론의 기초로 돼 약소민족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기도 했지만 실상은 제국주의의 침략적본질을 가리는 위선이었다. 미국은 1903 파나마독립을 지원했는데 그목적은 파나마운하통제권을 얻기 위한것이었다. 먼로독트린이 상대적약자인 미국이 열강의 개입을 거부하며 아메리카대륙, 서반구의 지배권을 노렸던것처럼 이제 미국은 절대적패권을 위한 첫발을 뗐다. 2차례의 세계대전은 미국을 <서반구의수호자>에서 <국제질서의최종조정자>로 변모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