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식표현으로 <조국해방전쟁>이후 북은 1956 조선노동당3차대회와 1961 4차대회에서 평화적통일을 위한 선언을 채택했다. 1960.8.14 김일성주석의 8.15해방15돌경축연설에서 연방제방식의 통일을 제시하는등 통일방안을 꾸준히 발전시키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남측에 평화적통일을 위한 제안들을 해왔다. 1972 7.4남북공동성명이 합의됐으며 1973.6.23 대민족회의를 제의했다. 김일성주석은 1975.10.9 조선노동당창건30돌기념대회보고에서 <조국의자주적평화통일을이룩하기위해서는민족대단결의원칙에서전국적인민족통일전선을형성해야한다>고 밝혔다. 1977.1.25 북의 18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가 개최되고 북의사회주의역량과남의애국적민주주의역량의대연합·북남간긴장상태완화와핵전쟁위험제거·민족대단결분위기조성·북남정당사회단체및각계대표들로구성된정치협상회의소집등 4개항의 통일방안을 남에 제안했 다. 1980 6차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통일방안으로 채택했다. 1980년대말 통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1990.8 범민족대회가 개최되고 같은해 11.20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됐다. 1991~92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불가침·교류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지대를 내용으로 하는 비핵화공동선언등을 합의했다. 1993.2 김영삼은 대통령취임사에서 <어느동맹국도민족보다나을수없다>고 말하고 같은해 4.6 김일성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제시한다. 우여곡절끝에 1993.10.5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1차실무대표접촉이 시작됐다. 1994.3.19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8차실무대표접촉에서 남측의 핵문제우선해결등의 주장에 북측은 핵전쟁연습금지·패트리어트미사일반입중지·김영삼의<핵무기를가진자와악수할수없다>는등 대북강경발언취소등을 주장하며 격렬하게 부딪혔다. 이과정에서 북측대표가 <여기서서울멀지않다.전쟁일어나면서울은불바다>라는 발언을 했다. 남측은 이발언을 공개하며 회담결 렬을 선언했다. 북은 남정부가 북미3단계회담을 방해하기 위해 특사교환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북미회담이 진행되면서 카터미국전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주석과 회담한뒤 김일성주석과 김영삼대통령사이의 수뇌회담이 합의된다. 김일성주석의 서거이후 김영삼정권의 파쇼적인 통일운동탄압으로 남북관계는 회복할수 없는 길에 들어섰지만 북미회담은 계속 진행돼 1994.10.21 제네바기본합의를 발표했다. 김영삼은 자신이 미의 전쟁주장을 막았다고 했지만 김영삼의 전쟁주장을 클린턴미대통령이 받아들이지않았다. 대화가 안되면 결국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