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6월민중항쟁이 <절반의승리>가 된 조건에서 민중진영은 역량을 강화하는것이 무엇보다 관건적인 과제로 제기됐다.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은 우선 군사파쇼체제하에서 불법화돼있던 민중정당을 합법정당으로 건설하는것이었다. 또 급속하게 장성하고 확대·강화된 기층민중단체들을 강력한 연합전선체로 묶어세우는것이었는데 당시 이를 <민족민주전선>전략이라 했다. 정당은 정권의 직접적담당자이며 통일전선은 정당과 정권의 대중지반이다. 이에 의거해 민중진영은 1990.11 민중당을 결성하고 1991.12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을 결성했다. 민중당은 1992 총선에서 정당득표율이 미달되면서 해산했다. 이후 민주노총의 <노동자정치세력화>결과 1997 대선에서 <국민승리21>에 이어 2000 민주노동당창당의 결실을 맺으며 민중정당·진보정당운동이 일정정도 전진했다. 민족민주전선체로 전국연합이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과 국민연합(민자당일당독재분쇄와민중기본권쟁취국민연합)을 통합해 건설됐다. 전민련은 1989.1 8개부문단체와 12개지역단체등 총260개단체의 참여로 결성됐다. 전민련은 민중중심의 원칙을 내건 민족민주운동단체들의 상설적공동투쟁체이며 민족민주변혁의 정치적구심으로서의 전망과 기대로 출범했다. 하지만 기본계급역량이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지못하고 재야운동역량중심으로 조직·운영되며 한계를 갖고있었다. 국민연합은 3당야합에 따라 한시적공동투쟁체로 설립됐다. 전민련에서 합법정당추진세력이 분리돼 민중당을 창당하고 남은 세력은 국민연합과 통합해 전국연합을 건설했다. 전국연합은 1980년대후반~1990년대초반 민족민주운동과 기층민중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족민주운동의 투쟁의 구심체이자 정치적대표체를 자임했으며 남에서 기층대중조직들을 거의 모두 망라한 높은 수준의 폭넓은 남지역의 민족민주전선체였다. 그러나 1992 대선평가로 내부분열을 겪고 김영삼정권당시 범민련중심의 통일운동노선과 관련해서도 혼란을 보였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등 전술적성과도 있었지만 30여년기간 운동의 표류와 침체에서 벗어나지못해 1987 6월항쟁이후 더 높은 변화의 파고를 만들어내지못했다. 이후 어떤 민족민주전선체도 6월항쟁이후만큼 강력하게 추진되지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