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 항쟁의기관차〉 해방과 독립의 기치로 될수 없는 〈알리야〉

유대인은 히브리인에서 기원한다고 본다. 히브리인은 BC22C부터 이지역(현팔레스타인지역)에 있었던것으로 알려진 가나안인들과 구별되지만 그문화권에서 형성·발전해온 민족이다. 16세기경부터 가나안인들은 이집트신왕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을 형성했다. 히브리인들은 15세기경부터 이곳에서 농촌지역에 공동체를 이뤘다.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인 야곱과 아들들은 기근이 들어 이집트로 이주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의 노예로 됐다가 모세에 이끌려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왔다.(<출애굽>) 히브리인들은 12지파동맹체인 판관(사사)기를 거쳐 이스라엘왕국을 건국한다. 다윗시대 이스라엘은 이집트변경에서 유프라테스강유역까지 점령했으며 솔로몬시대에 예루살렘(쿠드스)에 성전을 건축하고 종교중심지로 삼았다. 솔로몬이후 이스라엘은 왕위다툼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었다. 북이스라엘은 BC722 아시리아에, 남유다는 BC586 바빌로니아왕국에 의해 멸망했다. 바빌로니아왕국은 히브리인들을 본국으로 끌고가 노예로 삼고 유대인이라고 불렀다. BC539 페르시아에 의해 바빌로니아왕국이 무너진뒤 유대인들은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디아스포라>는 히브리어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BC586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인들이 강제이주되고 AD70경 로마제국이 유대인을 쫓아낸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가나안지역은 페르시아에 이어 알렉산더시기 마케도니아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뒤 잠시 유대국가가 번성했지만 BC63 로마제국에 점령당했다. AD66 유대인반란군이 예루살렘과 갈릴리전지역(현이스라엘북부)을 장악했다. 로마의 반격으로 예루살렘만 고립됐고 70 로마의 예루살렘탈환작전으로 이지역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일부는 로마에 포로로 끌려갔다. 솔로몬시기 처음 지어졌던 성전은 이후 바빌론에서 귀환한 이들에 의해 재건됐다가 헤롯(로마가세운유대지역의왕)에 의해 다시 건설되기 시작했으나 이시기 완전히 파괴됐다. 전쟁은 73 <마사다>요새가 함락되면서 종결됐다. 132~135 2차전쟁까지 치르고 로마는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고 들어가지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뒤 1948.5 이스라엘의 건국선언으로 이어졌다. 유대인에게 있어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 주어지는것은 종교적계시의 실현이다. 귀환을 의미하는 <알리야>는 약속의 성취며 그믿음의 증거다. 유대인이 고대에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가게 됐지만 모세에 의해 다시 돌아왔던것처럼 지금도 다시 돌아갈것을 믿는것이다. 모세는 40년간 광야를 헤매다가 가나안땅을 밟지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는 고난이며 시험을 의미한다. 새로운 땅으로의 이주를 두려워한 이들을 처벌하고 새로운 세대들로 하여금 새로운 땅에서 새역사를 시작했다는것이다. <알리야>는 신약의 예수재림과도 이어진다. 로마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313 모든 종교의 자유를 승인하는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됐고 그뒤 유대인들도 1년에 1번 신전이 파괴된 날로 전해지는 하루, 성벽잔해를 찾아가 애통해하는것이 허용됐다.(통곡의벽(엘마브카<우는장소>)) 나중에는 이슬람성소가 건설돼 서쪽벽으로 옮겨졌다. 유대민족은 고대시대로부터 유래된 유대교의 교리에서 해방과 독립의 원리들을 찾고있다. 이종교적신념은 다른 종교와의 갈등과 분쟁의 요인이 되고있다. 현실은 종교적신념의 시대적제한성과 허구성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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