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은 제국주의국가간의 식민지재분할과 세력권쟁탈을 위한 책동으로 시작됐다. 1차세계대전후 제국주의자들사이의 모순과 대립은 더욱 심화됐다. 1929~33 세계경제공황은 제국주의의 정치경제적위기를 격화시켰다. 경제공황으로 영국과 미국도 <금본위제>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탈리아와 독일에 제국주의통치방식인 파시즘정권이 수립됐다. 제국주의국가는 수탈한 식민지초과이윤중 일부를 개량화의 물적토대로 갖는데 뒤쳐진 제국주의국가는 그같은 물적토대를 갖지못하고 파쇼화됐다. 이는 제국주의변종으로 2차세계대전당시 제국주의주변부에서 나타났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반파쇼인민전선을 통해 파쇼세력의 집권을 견제했다. 코민테른은 1935.7 7차대회에서 반파쇼인민전선노선을 채택하고 당면해 파쇼세력에 맞서 투쟁할것을 제기했다. 스페인에서는 프랑코군부가 인민전선정부에 군사정변을 일으키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소련을 비롯한 53개국에서 모인 의용군 약3만2000여명으로 7개국제여단을 편성해 지원했으나 독일나치와 이탈리아파시스트당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군부에게 패배해 파쇼정권이 수립됐다. 1936 프랑스도 인민전선정부를 수립했으나 2차세계대전발발과 함께 나치에 점령당했다. 나치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침략적으로 병합한뒤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테란트지역 할양을 요구했다.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와 상호원조조약을 맺고있는만큼 체코슬로바키아가 직접 나라를 방어해나서는 조건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지원할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는 제국주의열강에 기대를 걸었고 영·프·독일·이탈리아는 주데테란트지역의 할양을 결정하는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미·영·프제국주의자들은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것이라고 했으나 이듬해 나치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전역을 점령하고 폴란드를 공격해 2차세계대전을 본격화하는 서막으로 됐다. 소·영·프의 3자군사동맹협상이 중단되자 나치독일이 소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하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영·프는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1940.5 독일은 서부의 프랑스로 진격했다. 이듬해인 1941.6 소련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련은 1942.8~1943.2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의 승리와 이어진 반격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1941.12 일제의 진주만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해 미국도 2차세계대전에 뛰어들게 됐다. 1942.5~6 소·영, 소·미사이에 각각 반파쇼전선에서 협력할것을 약속하는 협정과 조약을 체결했으나 1942이 지나기전 유럽에 2전선을 형성할것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않았다. 1944 소련이 독일동부전선에 성과를 이어가면서 2전선 없이도 나치독일을 물리칠것이 확실해질무렵 미·영은 1944.6.6 노르망디상륙작전에 나섰다. 스탈린은 미·영제국주의자들에 대해 <영국은시간을얻고미국은돈을벌었으며소련은피를바쳤다>고 했다. 소련의 노력은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세력의 확대로 이어졌다. 이들 나라에서 소련의 영향력은 높아졌고 2차세계대전이후 여러나라에서 혁명이 승리하는 혁명의 대고조기를 가져왔다. 2차세계대전은 나치독일과 그동맹국인 추축국에게는 침략과 약탈을 위한 전쟁이었으며 미·영·프제국주의자들에게도 경쟁자들을 제거하며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민족해방세력을 교살하고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침략전쟁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이 도발한 전쟁은 전세계민주주의역량의 숭고한 투쟁을 통해 반파쇼전쟁으로 전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