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여러번 본 영화다. 북에서는 <정탐>영화라 부르는데 이런 스파이물은 흥미진진해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안볼수가 없다. 당연히 북만이 아니라 남, 세계의 다양한 스파이물을 즐겨 본다. 그리고 북의 스파이물의 독특함에 늘 빠져든다. 내용, 특히 사상성이 다르다. 이장점이 예술성과 만나면 명작이 된다. <이름없는영웅들>이 그렇다. 그만 못하지만 <붉은단풍잎>도 언제든 또 보고싶은 작품이 맞다.
언제 처음 봤는지는 삭막하나 주인공 정항명이 실존인물 성시백을 형상한게 맞는지 의문을 가졌던 기억은 선명하다. 오랫동안 독자활동을 하고 본부와의 연계를 추진하고 북침전쟁정보를 어렵게 보내고 폭로로 마감하는게 전혀 다르기에 그렇다. 실제 성시백은 스파이라기보다 조직가다. 조르게보다 박달에 가까운 사람이다. 혁명기지가 파견한 전권대표로서 지하조직을 구축하고 1948연석회의를 방조하며 다양한 정보사업을 했다. 소설<삼천리강산>이 잘 그려냈다.
북침이냐 남침이냐에 대한 과학적판단이 내려진지는 오래다. 문제는 거짓을 참으로 믿게 하려고 벌이는 세뇌다. 이영화와 함께 최근에 만든 <포성없는전구>가 북침정보를 빼내는데 역점을 두고있어 주목된다. 물론 전쟁의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 정의의전쟁인가 부정의의전쟁인가, 민족해방전쟁인가 제국주의전쟁인가. 전쟁은 그자체로 대격변기다. 2차세계대전처럼 정의가 승리하면 대격변기는 대고조기로 이어진다.
북영화의 발전추세는 안타깝다. 왜 영화가 소설이나 음악만 못한가. 영화에서 전형성과 상투성은 종이 한장의 차이다. 옥의 티도 문제다. 연기자가 서툴면 아예 그장면은 빼야한다. 유튜브로 다 볼수 있는 시대에 <국내용>이란 뒷문은 더이상 통하지않는다. 무조건 눈은 세계를 봐야한다. 북영화를 즐겨 보는 이유는 그만한 매력이 있어서다. 남영화처럼 북영화도 찾아보는 외국인들이 빠르게 늘고있다. 북영화의 새로운 고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