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 항쟁의기관차〉 〈특수전〉실패에 이은 연속적패배, 베트남전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인에의한베트남의전쟁>의 <특수전>수행을 목적으로 CIA(미중앙정보부)의 활동이 진행됐다. 미국은 1950년대말부터 이미 현지인들을 내세워 전쟁을 수행한다는 논리로 정보기관을 동원해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벌였다. 일제패망직후 베트남에서는 프랑스가 미·영서방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벌였으며 이에 맞선 베트남인들의 민족해방전쟁이 전개됐다. 이런 측면으로 볼때 베트남전쟁은 심리전에서 미국의 패배로 시작된 전쟁이었다. 프랑스가 패퇴하면서 미국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CIA는 1954부터 남베트남에서 심리전기술을 훈련시켰고 제네바협정에 따라 17°선남단에 남베트남정부수립에도 깊이 개입했다. 남베트남인들을 비롯한 전체베트남인들은 미국의 개입에 맞선 새로운 투쟁을 이어갔다. 1959 <호치민루트>가 놓였고 남베트남에 <해방>군도 조직됐다. 1960.12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됐다. 1964.8.4 미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정공격을 받았다는 통킹(박보)만사건은 날조였고 이 조작된 사건에 의거해 8.7 미의회는 대통령에게 결정권을 일임하는 <통킹만결의>를 채택했다. 이날 존슨대통령은 미군에 베트남폭격을 명령했다. 미국내에서는 통킹만결의가 위헌적이라며 폐기해야한다는등 미대통령의 군사행동에 대한 권한에 지속적인 논란이 있었지만 이때문에 군사행동을 하지못했던적은 없었다. 코리아전에서는 <유엔결의>를 끌어들였고 베트남전에서는 <통킹만사건>을 들이댔다. 베트남전쟁의 패색이 짙어진 조건에 미정권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의 닉슨에게 넘어갔고 1971 뉴욕타임스가 <펜타곤문서>를 입수해 폭로하면서 통킹만사건의 조작사실이 알려졌다. 전쟁발발당시 존슨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는 1996 출간한 자서전에서 베트남에 대한 군사적개입을 위해 이같은 사건을 조작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기업인출신으로 국방분야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케네디정부에 의해 발탁됐고 국방장관퇴임이후에는 1968~81 세계은행총재를 역임한 자다. 공식적인 전쟁기간 미군은 엄폐물이 된다며 베트남의 밀림지대를 초토화하기 위해 다이옥신을 함유하고있는 <고엽제>7200만L를 공중에서 살포했다. 다이옥신은 베트남밀림에 뿌려져 토양에서 식물과 가축으로 옮겨지고 주민들은 세대를 이어 후유증에 시달리고있다. 2003 한학자는 베트남인350만명이 다이옥신에 노출돼 피해를 받았을것으로 추정했다. 직접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노린 생화학전·세균전과 다름이 없다. 베트남전은 국외적요인으로 국제평화애호세력들의 일치된 투쟁과 국내적요인으로 반전여론에 의한 미국내의 분열이 크게 영향을 끼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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