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 항쟁의기관차〉 미국의 수렁이 된 아프간전

카터미대통령은 1979.7.3 아프간(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비밀원조를 제공하는 첫번째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미국은 아프간이슬람무장조직에 약35억달러의 금액을 지원했다. 당시국가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는 카터에게 미국의 이와 같은 지원이 소련의 개입을 초래할것이라고 설명했으며 이비밀공작은 소련을 아프간으로 끌어들인 탁월한 전략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겪은 경험을 소련도 겪게 할 기회였다는것이며 탈레반의 몰락보다 소련의 몰락이 역사적으로 더큰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아프간개입은 1978 CIA(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시작됐다. CIA는 아프간의 이슬람극단주의세력을 단결시켜 소련군에 맞서 싸우게 했다. 1989 소련군철수이후 미국은 무기원조를 종료했지만 아프간무슬림과의 전략적관계를 유지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시아파에 적대적인 정권의 수립이 이란의 영향력을 제한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프간은 이란·소련·중국과 국경을 접하고있는 나라로 당시 미국은 이지역거점을 필요로 했다. 미국은 1980년대 아프간에서 아프간무슬림을 내세워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특수전>을 수행해 소련을 견제하는데 일정정도 성공했으나 2000년대 <9.11테러>를 조작하고 직접 군대를 투입한 뒤에 2021.8 약20년만에 탈레반에 정권을 내주며 아프간에서 치욕적으로 철군했다. 2021.6 미하원은 2001 9.11사건직후 3일만에 발효된 대통령의 전쟁선포권한과 2002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의회가 통과시킨 <이라크결의안>에 규정된 대통령의 군사력동원권등의 무력사용권(AUMF)등을 폐지할데 대한 표결을 진행, 찬성268표, 반대161표로 가결해 미대통령의 무력사용을 제한했다. 딥스세력은 미정부에 대한 반대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런 조치들을 적절히 배합한다. 실제 미정부의 정책관철에서 이런 의회의 결의가 결정적이지않았다. 2001 아프간전쟁을 개시한 후 부시정부는 14세이하 미국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아프간어린이들을 위한 1달러기부운동에 참여하도록 호소했다. 아프간에서 미국방부는 미사일과 폭탄을 퍼붓는 동시에 난민들에게 식량과 함께 선전지·라디오를 투하하며 심리전을 병행했다. 미군이 심리전의 하나로 탈레반활동지역에 전단을 뿌렸다가 아프간특수전사령관이 직접 나서 사과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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