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초 소련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다민족연방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서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분리독립했다. 남은 지역은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으로 이어졌다. 신유고연방에 포괄돼있던 코소보자치주에서는 알바니아계인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활동했다. 1998.10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코보소자치주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조직적인종학살이 벌어진다며 무력사용을 결의하고 1999.3.24 세르비아공화국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3.27 유고연방의 몬테네그로공화국은 중립을 선언했다. 유엔에 상정된 평화결의안에 세르비아가 서명하면서 6.25 공식적으로 종전됐다. 유고연방대통령 밀로셰비치는 전쟁범죄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됐다가 판결전에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미국과 나토의 코소보공습에서는 걸프전에 이어 전자전장비가 적용됐는데 정밀유도무기의 오폭논란이 적지않게 있었다. 오폭은 민간인의 희생을 동반했다. 베오그라드소재 중국대사관이 폭격을 당하자 중국정부는 미국의 고의적인 공격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내 반미시위가 일기도 했다. 세르비아는 나토의 공습이 개시되자 나토본부·미정보국·미해군컴퓨터시스템에 대한 사이버공격을 가했다. 나토서버에는 하루2000여건이 넘는 전자우편이 폭주하고 유고슬라비아가 보낸 매크로바이러스가 빠르게 자기복제를 하면서 나토전산망을 파괴했다. 미국의 백악관·에너지부·내무부홈페이지에는 나치의 갈고리십자가<하켄크로이츠>와 외설사진들이 게시됐다. 세르비아에 기반을 둔 해커집단들은 나토소속 폭격기의 공습을 받아 폐허가 된 도시와 시체들을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걸프전당시 미국이 CNN TV방송으로 미사일폭격장면을 전세계에 송출하면서 미국의 군사력을 과시했다면 그런 강력한 매스미디어를 보유하지못한 나라들이 인터넷공간을 이용해 자신들의 입장을 보여줄수 있게 됐다는것을 의미했다. 당시 세르비아측은 사이버심리전에 이용하는 정도였지만 미국에게 사이버전은 위협적이었다고 평가됐다. 미국은 전산망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로서 당시 전세계 컴퓨터시스템의 42%와 인터넷자원의 60%를 차지했다. 당시 클린턴미대통령은 반격을 지시하고 알바니아계코소보난민들을 훈련시켜 유고슬라비아의 전산망과 전력을 차단하고 연료탱크를 폭격하는 비밀작전을 전개했다. 클린턴은 이작전을 지시하기전인 5.22 사이버전에 대비해 예산14억6000만달러를 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