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하고 중국대륙침략을 획책하며 괴뢰만주국을 세웠고 중·소국경지역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1941 진주만공습으로 2차세계대전에 전면적으로 참가했다. 넓은 의미에서 1937 일제의 중국대륙침략을 2차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2차세계대전에서 세계반파쇼전선을 형성한 소련·미국·영국은 1943.12 테헤란회담, 1945.2 얄타회담, 1945.7 포츠담회담등에서 전후처리를 두고 논의했는데 그중에는 조선의 운명문제도 포함됐다. 조선에 대한 전후처리는 패전국독일의 점령지인 오스트리아가 연합국측에 분할점령됐다가 민정으로 넘어간것과 비교된다. 김일성주석은 분단되지않은 오스트리아를 두고 <부럽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한편 코리아반도의 전후정세는 2차세계대전후 중국·그리스가 이념·노선대립의 내전으로 이행했던것과도 비교된다. 전후 세계에서는 기존자본주의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타파하는,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가 새로운 사회의 사상·이념으로 전면에 등장해 동력을 얻고있었다. 내전은 역사적으로 사회변혁의 중요한 한형태로 존재해왔다. 미국독립전쟁은 부르주아혁명의 대표적사례며 프랑스혁명 또한 하나의 내전이다. 중국은 근대화시기 제국주의국가들에 유린당했다. 그리스는 오랜 기간 영국식민치하에 있다가 나치독일의 침략을 당했으며 독일이 패전한뒤 다시 연합국측의 영국이 그리스로 들어갔다. 전후 그리스에서는 영국꼭두각시왕정과 반나치레지스탕스투쟁을 영도한 민족해방세력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리스에서도 약화된 영국을 대신해 미국이 직접 나서 민족해방세력에 대한 토벌을 자행했다. 미국은 코리아반도에 38°선을 그어놓고 1945.9.2 일본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은뒤 9.7 태평양방면미육군부대총사령관 맥아더의 포고령에 기초해 38°선이남지역에 군정을 수립했다. 이남지역의 건국준비위원회·인민위원회등의 모든 활동을 불법화했다. 소련·미국의 세계양대강국의 군대가 주둔한데다 미국은 제국주의패권세력으로 유엔을 조직하며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 내정에 개입해나서는 상황이었다. 만주지역에서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지향을 갖고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해온 민족해방민주주의세력은 일제를 몰아내는 전쟁을 조직·전개해 승리로 이끌었다. 이들은 인민위원회의 민의를 모아 38°선이북지역에 1946.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건설하는 주체세력으로 됐다. 이들은 선거를 조직해 1947.2 북조선인민위원회로 발전시켰다. 이남지역은 외세의 군정치하에서 내전의 가능성마저 철저히 진압됐으며 미군정에 반대하는 민족해방성격의 투쟁이 전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