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해방이후 평화통일노선을 고수해왔다. 특히 1960 4.19정국때까지 남북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구성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김일성주석은 1960 8.15해방15돌경축대회에서 외세의 간섭없이 민주주의적인 남북총선거가 평화적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길이지만 남당국이 아직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방안을 받아들일수 없다면 과도적대책으로서 남북연방제를 실시할것을 제의했다. 그에 의거하면 과도적연방제는 당분간 북남의 현정치제도를 그대로 두되 두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된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서 북남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는 북남의 실업계대표들로 경제위원회를 조직, 경제협조와 교류를 통해 남의 경제적파국을 수습할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자는 안이었다. 1970전후 중미데탕트의 국제정세속에서 미국은 제국주의위기의 출로로 박정희정권에게 북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했다. 미국은 주남미군의 일부철수까지 하며 남북관계개선을 추진했다. 1972.5 첫남북고위급정치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김일성주석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의 합의를 제안했다. 남이 이에 합의해 1972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나 1973.6.23 박정희는 <6.23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을 발표하며 남북유엔동시가입을 주장했다. 김일성주석은 예견했다는듯 같은날 <조국통일5대방침>을 발표해 대민족회의소집·단일국호에의한연방제실시·단일국호유엔가입등을 제안했다. 북은 남의 남북동시유엔가입주장에 대해 <2개의조선>정책이라며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다. 1980 조선노동당6차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채택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의 본질은 북남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에서 북남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내오는것이며 민족통일정부밑에서 북남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창립이라고 밝혔다. 연방국가의 통일정부의 구성원칙과 활동범위는 북과 남의 같은 수의 대표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대표들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해 북과 남의 지역정부들을 지도하며 연방국가의 전반적인 사업을 관할하도록 하는것이 합리적이라며 이같은 안을 제시했다. 최고민족연방회의와 그상임기구인 연방상설위원회는 정치문제와 조국방위문제, 대외관계문제를 비롯해 나라와 민족의 전반적이익과 관계되는 공동의 문제들을 토의결정하며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모든 분야에서 북남사이의 단결과 합작을 실현하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자기의사를 강요하지못하도록 해야한다고 규정하고있다. 1990.5 김일성주석은 최고인민회의9기1차회의시정연설에서 <조국통일5개방침>을 새롭게 제시했다. 김일성주석은 5개방침의 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마련의 원칙에서 북과 남의 단일의석에 의한 유엔가입을 제안했다. 이는 최저선으로 <2개의조선>정책에 대한 북의 원칙적입장을 분명히 한것이기도 했다. 이후 북은 동시가입을 수용하게 됐으나 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마련이라는 원칙하에 불가피하게 이뤄진 조치라는 측면에서 설득력을 가질수 있었다. 1980년대 남의 전두환정권은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을 제시했지만 남북관계개선과 민족의 단결·단합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못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정통성 없는 정권이 북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의식해 꾸며낸 기만책이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