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군사패권, 미국중심의 세계군사동맹체제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조직하고 그와 유사한 형태의 세아토(동남아시아조약기구)·네아토(동북아시아조약기구)·메토(중동조약기구)등도 추진했으나 나토외에는 유지하지못했다. 최근년에 와서 일본과 필리핀, 호주등이 결합한 스쿼드·오커스로 이어졌다. 나토는 <전략개념>을 1991 처음 공개했는데 나토의 가치와 목적, 임무를 확인하는 핵심문서로서 이에 대해 <동맹이직면한안보문제를종합적으로평가하고나토의정치및군사적과제를제시한다>고 밝히고있다. 나토의 최고군사기구로서 성원국각국의 총참모장들로 구성된 군사위원회(MC)가 있다. 군사위원회의 상설그룹으로 유럽지역, 대서양지역을 비롯한 각각의 지역사령부가 있으며 미국·캐나다지역계획그룹이 있다. 연합군사작전을 위한 최고사령부는 유럽연합군최고사령부(SHAPE)다. 코리아전의 발발이후 소련에 맞선 유럽방어를 목적으로 서방국가들간의 논의가 이뤄졌던것을 시초로 하고있다. 역대최고사령관은 미군장성이, 부사령관은 영국군 또는 독일군의 장성이 맡아왔다. 1960 미국은 로케트설치에 따른 모든 비용은 성원국들이 공동부담하고 그관리권은 미국만 갖는 <다각적핵무력창설안>을 제시했으나 성원국들의 반발을 샀다. 1956 2차중동전쟁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소련과 미국의 핵위협을 받아 이집트에서 철수할수밖에 없었다. 드골은 나토를 미·영·프3강체제로 구상했지만 프랑스가 핵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미국에 불만이 쌓인 드골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고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며 나토통합군의 지휘체계에서 탈퇴하고 프랑스주둔미군을 쫓아내면서 독자노선을 취했다. 드골은 <나토는프랑스의독립과국익에배치된다.우리가나토회원국이된것은소련의공격으로부터보호받으려는이유에서였다.그러나나는지금소련이공격해올것으로믿지않는다⋯나토는이제더이상동맹체제가아니다.그것은종속체제다⋯우리는우리를책임져주는미국과같은상전을받아들일수없다.>고 일갈했다. 미국은 1966 <핵공유>전략을 세우고 나토에 NPG(핵계획그룹)를 구성했다. NPG는 회원국국방장관들로 구성돼 핵무기운용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고 핵무기정보를 공유하고 핵전략을 논의·조율한다. NPG는 유사시 핵타격 대상과 순서, 규모를 결정하지만 미국이 최종결정권을 쥐고있다는것은 달라지지않는다. 나토식핵공유는 핵무기사용에 수반되는 정치적, 군사적, 윤리적 부담과 책임을 미국과 유럽의 나토회원국들이 공유함으로써 핵운명공동체를 이룬다는 심리적안심효과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평가다. 1994.1 벨기에 브뤼셀정상회의에서 나토의 동진정책이 정식으로 제기됐다. 러시아는 나토의 동유럽에로의 확대가 새로운 냉전을 유발시킬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강력히 반대했다. 러시아와 미국은 나토확대문제를 놓고 10여차례 회담을 갖고 1997.5.27 파리에서 러시아와 나토간의 기본조약을 조인했다. 나토는 동쪽으로 확대하는경우 새로운 나토가입국들의 영토에 나토의 군사시설과 핵무기를 배비하지않으며 상용무력의 배치를 제한하기로 했다. 또 양측은 공동상설이사회를 창설하고 유럽의 안전보장문제를 비롯한 임의의 문제들을 완전한 평등의 원칙하에 토의·결정할것을 합의했다. 억제전략으로 만들어졌던 나토가 냉전이 종료된뒤에 실질적인 군사행동단계로 넘어가 제국주의전쟁모의판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나토는 2003 유럽연합군사령부(ACE)를 전세계에서의 나토군의 작전수행을 위해 연합군작전사령부(ACO)본부로 개편했다. 나토는 유고슬라비아내전개입을 넘어 직접적으로 코소보전쟁을 벌였으며 2001 9.11사건이후 미국의 <테러와의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아프가니스탄전쟁·이라크전쟁등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