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의 결과 막대한 부가 미국으로 유입됐고 유럽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것과 더불어 그만큼 피폐해진 상태였다. 미국은 유럽에 대해 대규모경제지원을 실시하고 유럽에서의 미제의 영향력을 높였다. 패전뒤 미군정치하에 있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서독과 일본은 패전국으로 미국의 영향력하에 전후복구가 이뤄졌는데 양국 모두 미군지휘하에 진행된 코리아전의 전쟁특수를 누렸다. 서독경제가 급격히 성장해 전후 10여년만에 서독은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력을 뛰어넘어 미국에 이은 세계2위의 경제력을 갖게 됐다. 일본 역시 동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지원과 코리아전·베트남전의 전쟁특수까지 더해 1968 서독을 뛰어넘어 세계2위의 경제력을 기록했다. 한편 미국은 1960년대 금보유량이 한계에 달했고 1961.11 국제결제은행월례회의는 <금풀협정>으로 미달러의 금태환부담을 완화하고자 했다. 프랑스가 금풀에서 탈퇴하고 베트남전비의 부담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결국 1971 닉슨미대통령의 금태환중단선언이 이뤄졌다. 미국중심의 세계경제질서가 위기에 처하자 자본주의·제국주의진영은 이진영의 주요경제강국들과 부담을 나누기 위해 1973~76 G7(주요7개국)을 조직했다. 다른 한편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상으로 <오일달러>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극도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미국은 무역수지·재정수지의 <쌍둥이적자>압박을 받는 가운데 1985 플라자합의로 서독과 일본의 희생을 강요했다. 서독은 독일통일과 유로존등을 통해 경제를 유지했지만 일본은 결국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잃어버린30년>이라 일컫는 장기경제불황에 빠졌다. 최근 미바이든<정부>의 <디리스킹>정책으로 중국에서 자본이 이동하면서 일본의 경기가 다소 나아졌다는 평가다. 1997이후 G7에 러시아가 포함돼 G8으로 됐으나 2014 우크라이나크림반도합병이후 러시아의 지위를 박탈해 G7으로 돌아갔다. 2010 중국경제는 <G2>로 평가될만큼 경제규모가 성장했으나 중국은 한번도 이대열에 끼지않았다. 미바이든<정부>가 <신워싱턴컨센서스>와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을 내세웠을때 G7정상회의에서도 안보·경제·인권등에 걸쳐 전방위로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을 합의했다. 2023.5.20 G7히로시마정상회의공동성명에서 <동중국해와남중국해상황을심각하게우려하고있다.우리는무력과강압에의한어떠한일방적현상변경시도에도강력반대한다.>·<우리는경제적회복력이위험제거와다각화를필요로한다는점을인지한다.우리의핵심적인공급망에서과도한의존성을줄일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는경제적강압에대한회복력을기를것>이라고 강조하고 이어 <과도하게무역과투자를제한하지않은채,우리의국가안보를위협하는데사용될수있는특정선진기술을보호할필요성을인지한다>며 불법기술이전등에 반대를 표명했다. 공동성명은 <우리는티베트와,강제노동문제가우리의주요우려사항인신장을포함한중국내인권상황에대해계속우려의목소리를낼것>이라고 하고 홍콩에 대해서도 홍콩기본법을 존중하라고 중국을 일방적으로 비난했다. G7국가들은 우크라이나전발발이후 대러경제제재와 미국의 대중국반도체수출제한에도 지지를 보냈다.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계획에서도 이탈했다. G7은 제국주의경제동맹체로 현대제국주의의 미국을 정점으로 결탁된 제국주의체제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