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필리핀·영국령말라야·보르네오·미얀마·라바울·네덜란드령동인도를 점령하기 위해 3개의 공격방향을 설정하고 남태평양도서지역과 호주의 전략적요충지를 점령할 계획을 수립했다. 중앙태평양의 미드웨이제도와 북태평양의 알류산제도를 전략적요충지로 지정했다. 일본은 진주만공습과 동시에 이같은 작전을 전개해 방어선을 완성하고자 했다. 12.10 일본은 영국극동함대의 주력에 타격을 가하고 서남태평양상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12.8 말레이반도에 침입하고 12.25 홍콩을 강점했다. 12.10 필리핀 루손섬에 상륙해 1942.1 마닐라를 장악하고 이해 5월까지 필리핀을 완전히 강점했다. 1941.12 괌·웨이크·보르네오(칼리만탄)를, 1942.2까지 발리·티모르섬·암본섬등을, 1942.2~3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자바섬을 강점했다. 또 미얀마양곤·솔로몬제도·뉴기니등도 강점했다. 1942.5 일제는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일대 거의 전지역을 장악했다. 1942.1.1 연합국공동선언에 따라 영국장군 웨이벌이 ABDA사령부(동남아시아연합군최고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웨이벌은 미얀마에서 필리핀과 북부호주에 대한 통제권을 가졌다. 영국령인도제국과 하와이, 기타호주지역은 개별지역사령부를 뒀다. 2.15 싱가포르연합군이 전원항복했다. 인도·영국·호주·네덜란드군13만명이 일제에 포로로 수감됐다. 연합군의 급속한 붕괴로 ABDA사령부는 2개로 분열됐고 2.25 웨이벌은 사령관직에서 사임해 인도사령관이 됐다. 2.19 일본은 호주의 다윈을 공습했다. 호주에 대한 공습은 이후 19개월동안 100회가량 진행됐다. 호주는 상당한 군역량을 대독일지중해전선에 투입해놓은 상태였다. 동남아의 영국령들이 빠르게 점령당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호주는 12.27 미국에 공식적으로 지원요청을 했다. 미대통령 루즈벨트는 필리핀에 있던 맥아더에게 1942.3 호주정부와 함께 태평양방어계획을 수립할것을 지시했으며 호주는 남서태평양최고사령관인 맥아더휘하로 호주군을 편제하는것에 동의했다. 일본은 필리핀을 남태평양침공을 위한 전진기지로 보고 필리핀을 빠르게 점령했다. 미국도 이에 대비해 맥아더를 파견해 마닐라만4개도서를 요새화하고 필리핀군을 지휘체계에 넣어 <미극동지상군>을 창설하고 준비시켰다. 그러나 1942.3 맥아더는 호주로 빠져나왔다. 1945.5.5~6 필리핀의 코레히도르전투에서 미군이 패배하고 일본이 호주북부해역을 장악했다. 5.8 필리핀군과 미군은 필리핀에서의 항전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