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 항쟁의기관차〉 〈이름없는영웅들〉 공작

쓰고 또 써도 더 쓰고싶은 영화가 있다. 이영화는 교과서와 같다. 영화의 교과서기도 하지만 첩보의 교과서, 공작의 교과서다. <첩보>와 <공작>이란 말에 프로파간다가 세뇌시킨 부정적이미지만 없앤다면 딱 그렇다. 아마 만들때부터 염두에 둔듯하다.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런것이기도 하다. 원래 아는만큼 보고 듣고 느끼는 법이니, 당연하다. 가령 연락방법을 다양하게 보여주는데 의도적이라고 하지않을수 없다. 이쪽 방첩기관에서 당하는 장면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만들겠는가. 영화는 영화다. 

첩보원은 서로 보낸다. <공작원>은 좀 다르다. 조선은 <한국>에 보내도 <한국>은 조선에 보낼수 없다. <공작원>의 개념이 그렇다. 성시백은 첩보수집도 했지만 조직사업도 했다. 장개석선을 타고 입국해 전설적인 공작을 했다. 그 폭과 깊이를 보면, 세계첩보사만이 아니라 세계공작사의 최고봉에 이를만하다. 2차세계대전직후 파쇼진영을 붕괴시키면서 급고조되는 정세를 반영해 세상의 수많은 인재들이 혁명에 뛰어들었고 전무후무한 업적들을 이뤄냈는데, 그중 하나다. 성시백의 공작조가 이룬 <정형고지>전투관련 성과가 영화속에 반영돼있다.

유림과 순희의 애정선이 이상적이다. 사회주의나라에서 만든 영화는 확실히 다르다. 이애정선만큼이나 돋보이는 사건선이 있다. 박무의 파멸과정과 쿠데타세력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상대측의 내부갈등을 증폭시켜 서로를 치게 만드는것은 인류전쟁사에 오래된 고전적수법이다. 그러니 현실에서도 수많은 사례가 있다. 군이든 군이 아니든 방첩기관내 갈등이 증폭돼 자멸하는 과정은 미국영화 <굿셰퍼드>와 영국드라마 <스푹스>에도 잘 나온다. 제국주의국가들이 첩보전에서 밀리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않다.

책 <나의케임브리지동지들>의 필자 유리는 킴필비를 비롯한 <케임브리지동지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단언한다. 그들이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한 노력을 정당히 평가할때, 자연스레 <이름없는영웅들>이 떠오른다. 유림을 방조하는 외국인국제동지를 볼때 이책이 떠오르는것도 마찬가지다. <17일동안에있은일>과의 변증법적관계를 보면 오늘의 조선과 러시아가 떠오른다. 스타머가 바이든을 만날때 쇼이구가 김정은위원장을 찾았다. 보이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때로 보이지않는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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