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4.19항쟁이후 수립된 대통령 윤보선과 장면내각을 비난하고 부정부패척결을 내세워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렇게 등장했음에도 박정희군사정권은 주가조작부당이익·워커힐건설자금횡령·일본제승용차불법반입폭리판매·파친코반입허가횡령의 <4대의혹사건>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정권의 물적토대로 삼아 민정으로 이양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나서 벌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종필중앙정보부장의 사임으로 종결처리됐다. 잘 알려져있듯이 박정희는 부일장학회를 국가에 헌납하게 했고 이를 기반으로 이병철등 국내기업들의 기부를 받아 정수장학회를 설립했다. 한동안 박근혜가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박정희의 처 육영수가 1969 설립한 육영재단은 1980년대부터 박근혜·박근령·박지만남매의 경영권분쟁으로 얼룩져있으며 분쟁의 결과 이사장선임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하는 상황이 됐지만 현재도 재단운영에서 설립자의 직계인 <특수관계인>의 영향력이 큰것으로 알려져있다. 재단은 서울시내의 부동산등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있지만 관리등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못하고있다. 민정수립이후에도 박정희와 삼성 이병철의 공모하에 <사카린밀수사건>이 벌어진것으로 드러나면서 충격을 줬다. 삼성은 한국비료의 공장건설과정에 일본미쓰이물산으로부터 상업차관을 빌리는데서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고 미쓰이로부터 리베이트100만달러를 받았다. 삼성은 박정희와 합의하에 이자금을 냉장고등 전자제품과 스테인레스판과 사카린원료등으로 밀수해 들여와 판매하려다가 당시 삼성의 중앙일보발간을 견제하던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이사실을 기사화하면서 세관에서 뒤늦게 벌금을 부과해야했다. 군부와 중앙정보부등 공안기관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군사정권하에서 국가권력을 이용한 부정축재는 경제개발논리로 이어지면서 1970년대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