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 항쟁의기관차〉 그리스와 코리아, 〈냉전〉의 최전선

코리아반도와 발칸반도는 19세기말·20세기초 제국주의의 식민지쟁탈전의 앞마당으로 됐으며 1·2차세계대전을 거쳐 사회주의·민족해방세력과 기존의 패권세력인 제국주의사이에 접전지역이 됐다. 그리스와 코리아의 사회주의·민족해방세력도 제국주의파쇼침략세력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며 자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으며 세계적인 반파쇼전선에 기여했으나 제국주의자들은 이를 인정하지않고 <냉전>을 획책하면서 미국내 매카시즘등 반공프로파간다공세와 함께 이지역의 사회주의·민족해방세력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미국은 그리스를 사회주의권의 지중해진출을 막고 중동으로 가는 사활적이해가 걸린 전략적요충지로 봤다. 트루먼정부는 1947.3.12 그리스와 터키에 대규모군사원조와 재정지원을 제공할것을 결정하는 <트루먼독트린>을 발표하고 상하원합동회의에 지지를 호소했다. 다음날 이승만은 트루먼미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남코리아는그리스와비슷한전략적상황에놓여있다>·<미점령지역에과도정부의즉각적인수립은공산주의진출에대한보루를세우는일>이라며 트루먼독트린을 지지하면서 남코리아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은 남코리아의 제주도에 대해서 <지도를대충보더라도제주도가지정학적으로지극히중요한위치에있다>고 봤다. 코리아전쟁발발직후 트루먼은 보좌관들에게 <남코리아는극동의그리스>라고 빗댔고 <우리가그리스에서했던것과같이그들(공산주의자들)에게맞선다면,그들은어떠한조처도취하지못할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에서는 1944.10 나치가 철수하고 임시정부가 EAM(그리스민족해방전선)세력을 와해시키려하자 이에 맞선 봉기와 내전이 개시됐다. 총선거를 통한 정부조작과 이를 반대한 2차내전으로 이어졌고 그리스정부군은 작전에서 실패를 면치 못했다. 1947 그리스에 미군사고문단이 투입돼 토벌을 이끌었다. 같은 시기 미군정하의 남코리아에서는 단독선거로 <대한민국>이 건국됐고 이에 반대해 투쟁했던 제주민중항쟁을 제압하기 위해 미군정은 철군절차를 미루고 1948 겨울 토벌작전을 벌였다. 1948.5 주남미군사령부의 서울외신특파원들은 제주와 그리스의 유사점을 주목해 <조선은희랍(그리스)사태의완전한재연이다.희랍과남코리아는지리적으로만봐도너무나유사하다.두나라는다산악이많은반도다.희랍반도는공산주의자가지배하고있는<발칸>에연결되어있으며조선역시역사적으로소란의온상지이며현재공산군이세력을펴고있는만주에연결되어있다.>면서 서방연합국이 이두지역에 자금·선전·무기지원과 총선거를 추진한것도 짚었다. 경찰의 폭력성과 반민중성이 민중의 반발을 사고있다는것도 전했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도 계엄령이 선포되고 집단학살이 자행됐다. 지역주민들의 학살로 이어진 소개작전도 그리스와 제주도의 유사성이었다. 그리스내전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10만~15만여명이, 제주에서는 당시 제주인구의 10%에 가까운 2만5000~3만여명이 희생됐다. 1951.4 코리아전쟁당시 남코리아주둔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밴플리트는 1948 그리스내전당시 그리스에서 빨치산을 토벌하는 군사작전을 수행했고 그리스군대를 재건하는데서도 주된 역할을 했다. 유엔코리아임시위원단위원인 한필리핀상원의원은 <제주도를점령하려는소련의의도는극동을지배하고세계를지배하려는전략>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을 계기로 혁명세력들을 말살하려했다는것을 보여준다. 이는 <냉전>이 철저히 제국주의의 침략적산물이라는것을 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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