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29 그리스독립전쟁이 벌어졌다. 봉건왕조세력이 획책했던 빈체제는 이를 계기로 붕괴됐다. 그리스를 둘러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것을 우려한 영국·프랑스는 오스만제국을 견제한다는 구실아래 <동맹>을 추진했다. 3국의 지원으로 1830 그리스독립이 선언됐다. 일시적으로 공화국이 선포됐지만 열강들은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군주제를 성립시킬것을 결의했다. 초대왕실은 독일출신으로 독일의 이익을 대변했다. 1914 1차세계대전발발로 친독일성향의 왕당파와 연합국에 우호적이던 베니젤로스파간 갈등이 격화됐다. 1922 그리스·튀르키예전쟁의 패배를 명분으로 베니젤로스파는 왕정을 폐지시켰다. 공화정이 출범했지만 1929 대공황의 여파로 오래가지못했고 왕정으로 후퇴했다. 1917 러시아사회주의혁명승리후 1918 그리스사회주의노동당(SEKE)이 출범했고 1924 KKE(그리스공산당)로 개칭했다. 불안정한 정국속 당원수는 1929~36 1500명에서 1만5000명으로 증가했다. 1936 총선에서 5.76%의 득표율로 15석을 차지하며 정치세력화됐다. 위기감을 느낀 국왕은 육군상에 메탁사스를 지명했다. 메탁사스는 1936.5 산업계의 불안이 만연하자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8월 KKE가 주도하는 담배산업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예고되자 의회를 정지시키고 <8.4체제>를 구성했다. 메탁사스파쇼정권은 KKE를 탄압했고 총서기였던 자카리아디스를 구속했다. 1940.10.28 그리스·이탈리아전쟁이 발발하자 자카리아디스는 감옥에서 반파쇼전쟁으로 전환할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내보냈다. 1941.4 나치독일의 그리스점령이후 KKE중심의 EAM(민족해방전선)이 창설됐다. 이어 ELAS(그리스인민해방군)를 조직하고 1942.2 EAM중앙위는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할것을 결정했다. EAM은 유격대활약을 거듭하며 1944무렵 그리스영토의 4/5를 해방시키고 실질적인 전시정부역할을 수행했다. 이때 KKE지지자는 200만명에 달했다. 한편 독일군점령하에 있던 아테네에 연합군이 입성했고 6일뒤 망명했던 요르요스파판드레우가 귀국했다. 영국을 배후에 둔 파판드레우는 1944.5 KKE의 약화를 목적으로 연석회의를 개최, 24명각료중 6명을 EAM에 제안하면서 통합정부구성을 이끌어낸다. 12월 통합정부는 ELAS를 완전히 해체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반발하며 12.2 EAM각료6명이 사임했고 12.3 아테네에서 공동주의세력과 영국군은 전면충돌했다. KKE지도부내에서 영국을 적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며 노선상 혼란이 야기됐다. 바르키자조약에 합의한 오류는 1년간 백색테러와 약4만명투옥의 결과를 낳았다. 1945.5 다하우수용소에 수감됐던 자카리아디스가 아테네로 귀환했다. 1946.2 KKE는 무장투쟁을 선포하고 3월총선을 보이콧했다. 9월 조작선거로 왕정이 복고됐다. DSE(그리스민주군)가 결성되고 내전은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1947.3 트루먼독트린으로 미국은 영국의 역할을 넘겨받아 그리스내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그리스의 나토가입을 획책하며 소련견제의 교두보로 삼았다. KKE는 불법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