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 항쟁의기관차〉 우크라이나전의 시작은 2014〈마이단〉쿠데타 

1991 소련붕괴직전 그해 8월 소련을 유지하려는 봉기가 실패하고 고르바쵸프가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를 해산시키고 당서기직에서 사임한 날, 우크라이나의회에서 우크라이나독립선언이 통과됐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오랜기간 투르크·몽골의 점령하에 있다가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지역이 러시아제국에 포괄됐고 나머지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우크라이나는 1917.10 러시아사회주의혁명이후 1918에야 민족국가를 건설했다. 서우크라이나지역(오헝제국지배지역)도 독립해 이듬해 통일됐다. 1922 소련(소비에트공화국연방)이 건설될때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도 소련과 함께했다. 소련붕괴에 즈음해 소련소속의 러시아를 비롯한 11개공화국은 1991.12 독립국가연합을 위한 조약에 합의했다. 먼저 독립한 발트3국과 그루지야는 참여를 거부했다. 그루지야는 1993 뒤늦게 가입했지만 친서방정부가 들어서고 남오세티야갈등이 불거지면서 2008 독립국가연합에서 탈퇴했다. 우크라이나는 친서방정권인 포로셴코시기인 2018 독립국가연합을 탈퇴했다. 우크라이나전발발이후 몰도바에서도 독립국가연합탈퇴발언이 나오고있다. 소련붕괴는 발트3국으로부터 시작됐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시작된 <색깔혁명>의 첫번째는 그루지야의 <장미혁명>이었다. 1년뒤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정치인인 유셴코의 지지자들이 대선결과에 불복해 시위를 벌인 <오렌지혁명>이 일어났다. 2차(결선)투표결과 유셴코정권이 들어섰다. 유셴코정권의 우크라이나는 그루지야와 같은 시기에 EU(유럽연합)가입을 추진했다. 도네츠크주지사출신이자 2004 총리재직중에 대선에 출마했던 야누코비치는 2004 대선에서 <오렌지혁명>으로 유셴코에게 밀렸지만 2010 대선에 다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2014 친서방쿠데타인 <유로마이단>으로 결국 탄핵당했다. 그리고 포로셴코정권이 들어섰다. 친서방정권이 들어서면서 2014.3 크림지방정부와 세바스토폴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고 크림자치공화국은 러시아와 합병조약을 체결했다. 크림지역은 1954 우크라이나출신의 흐루시쵸프서기장에 의해 우크라이나에 양도됐으므로 그소속감이 크지않았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지역이었고 러시아계인들이 다수였으므로 그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돈바스지역 또한 유사해서 도네츠크·루간스크의 분리독립주의가 강화돼 돈바스전쟁으로 이어졌다. 9.5 민스크협정을 통해 휴전에 합의했지만 지역에서의 학살과 무장분쟁은 계속 이어졌다. 파시스트 반데라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발호해 마리우폴에 근거지를 둔 민병대 아조프대대가 조직됐다. 아조프대대는 2014.11 우크라이나국민위병에 편입돼 정식군대로 됐다. 이들은 돈바스지역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러시아계주민들에 대한 악랄한 학살만행과 파쇼폭압을 자행했다. 우크라이나의 EU가입은 받아들여지지않았지만 미국은 대러군사전선으로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합동군사연습을 일상적으로 벌이면서 러시아를 압박했다. 2014 <유로마이단>시위는 2013말부터 친서방세력들의 친서방화를 주창하는 시위가 확산·폭력화되면서 이뤄진것으로 배후에는 미·서방세력이 있었다. 이로인해 우크라이나가 친서방과 친러로 양분돼 돈바스전쟁이 발발했으며 이때 이미 우크라이나전쟁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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