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 항쟁의기관차〉 파리코뮌정책의 계승, 쎄큐히떼쏘시알

1936 프랑스에서 공산당·노동자인터내셔널프랑스지부(SFIO·사회당)·급진당은 인민전선정권을 수립했다. 공산당은 인민전선의 승리에 기여했지만 정권에 참여하지않았다. 인민전선정권수립후 대량의 자본유출로 프랑스경제가 급격히 악화됐고 인민전선정권은 이를 통제하는데 실패했다. 프랑스는 1940 독일의 무력침공에 나치치하로 들어간다. 1943 프랑스공산당을 비롯한 레지스탕스조직을 통합한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가 조직되고 1944.2 레지스탕스세력의 무장력을 통합해 프랑스국내군(FFI)을 결성한다. 2차대전후 프랑스에는 미군이 주둔하며 사회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해방직후 프랑스에서는 공산당에 대한 지지가 높았고 선거에서도 최다득표를 했다. 1946 4공화국헌법전문 <모든노동자는그대표를 통해노동조건의집단적결정과기업의관리에참가한다>를 근거로 1946 공장위원회제도와 종업원대표제도가 법제화됐다. 1944 해방후 프랑스노동자들은 기업애국위원회·생산위원회·관리위원회등 노동자의 자주적조직들을 꾸리고 기업의 관리운영에 대폭 참가해 전국레지스탕스평의회강령에 기초한 생산부흥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노동자들의 생산관리투쟁에 대해 정부와 독점자본이 일정하게 타협하면서 기업의 관리운영에 입법조치를 통한 규제를 시도한다. 1947.5 공산당원각료들이 임금물가규제와 인도차이나전쟁수행위한대출등의 문제로 제기된 의회신임투표에서 사회당내각을 불신임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국내정책에서는 파리코뮌이 지향했던 민중적시책을 구현하는데에 집중했다. 이분위기속에서 파리코뮌의 민중정책들이 프랑스전국에 구현될수 있었다. 공산당소속 노동부장관 엉브후와즈크후와자의 헌신적노력으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민중적시책으로 평가받는 쎄큐히떼쏘시알(사회보장제도)을 실현시켰다. 쎄큐히떼쏘시알은 재정부터 운영까지 노동자·민중의 참여가 전제된 혁신적인 제도로써 노동자가 운영하며 노동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했다. 이를 통해 마련된 기금은 연금·의료·각종수당·교육·주택등 여러분야에 투입되면서 노동자·민중에게 보편적복지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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