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후 북의 전후복구건설은 남과 북의 차이를 크게 벌려놓았다. 미국은 남에 예속적인 전시경제를 추진한다. 일본의 자본이 남경제에 들어왔다. 경제기반시설로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이를 축으로 수출주도형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해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거점개발방식을 취했다. 영호남의 지역갈등은 박정희군사파쇼정권이 영남을 통해 지지기반을 결속시키고 호남을 통해 반대세력을 억누르는 정치적효과를 가지고있었다. 1991 한연구에 따르면 1963 영남지역은 전체제조업종사자37%, 부가가치32%를, 호남지역은 각각 12.2%, 11%를 점하고있었던것이 1983 영남지역의 제조업종사자비율 41.1%, 부가가치40.3%로 상승했고 호남지역은 각각 5.5%, 8%로 하락했다. 1960년대말~70년대 서울·인천지역에 수출산업공업단지를 건설하고 울산에 대규모석유화학공업단지를 조성하며 창원·구미·포항과 부산·거제등 영남지역이 집중개발된다. 비영남지역으로는 석유화학공업의 여수지역이 유일하다. 영남지역은 경제개발초기에 공업화시설이 들어서면서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호남지역은 철저히 소외됐다. 남정부는 1987∼91 2차국토종합개발계획수정계획에서 지역경제권개념을 도입해 수도권·중부권·서남권·동남권과 강원도·제주도와 같이 2개이상의 시·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웠다. 1992∼2001 3차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는 지방도시육성과 수도권집중억제, 중부·서남부지역신산업지대조성, 동서9개축·남북7개축격자형간선도로망체계구축, 주택·상하수도·여가시설투자확대, 국토개발주민참여와 지방간역할분담체계구축, 국토이용토지투기방지, 통일대비교류공간조성등의 전략이 제시됐다. <세계화>와 산업경쟁력강화를 명목으로 영종도인천국제공항과 부산·광양국제항만, 경부고속전철, 새만금간척사업, 서해안고속도로등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투자가 이뤄졌다. 의식적인 지역차별은 경제개발정책에서 두드러지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나타나는 파쇼화경향에는 지역감정이 이용된다. 외국에서는 극우들이 이민자들을 겨냥하는데 남에서는 지역감정을 자극한다. 이런 흐름은 정보화시대에 인터넷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있어 여전히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