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 항쟁의기관차〉 자본주의경제에서 화폐의 가상과 허상

1921.6~1924.1 독일의 물가는 10억배가량 상승했다.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당시에 이미 이런 과도한 배상금이 독일경제는 물론이고 유럽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정부는 채권을 발 행해 중앙은행인 독일제국은행이 채권을 인수하도록 했다. 이런 통화량증가, 재정적자의 화폐화로 물가상승이 초래됐고 이런 상승이 지속될것이란 예견은 사재기를 부추겼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저축의 요인은 줄어들며 채무상 환은 연기된다. 결국 투자위축과 기업부도로 이어진다. 거기에 외국인들의 마르크화매도세가 이어진다. 미달러대비 독일 마르크화환율은 1921초 60마르크수준에서 1923.11 4조2000억마르크에 이르렀다. 이로인해 2차세계대전이후 독일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최고의 정책목표로 두는 통화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2차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1944 브레튼우즈회의에서 미국은 세계각국에 금본위제를 내세워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새로운 세계금융질서를 제안한다. 이때 영국대표 케인즈는 무역정산때만이라도 세계화폐로 <방코르(Bancor)>를 쓰자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패권적기축통화를 고 집하면 재앙이 올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치달아 실제 전쟁이 발생할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기축통화를 고집했다. 현대제국주의하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제국주의나라들은 없었고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은 나타나지않았지만 마샬정책과 계속된 전쟁들로 미국의 금보유고는 현저히 떨어졌다. 1967 IMF(국제통화기금)는 미국의 금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SDR(특별인출권)이라는 특별채권에 의해 여러나라들사이의 연계를 설정한다는 <새로운세계화폐>체계를 만들려했다. 그러나 이는 각국사이에 실제통화량을 계산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않았다. SDR은 금과의 형식적관계마저 갖추지못했으며 본질상 미국달러를 대신하는 예금화폐에 불과했다. 이런 위기과정을 거친 1970년대 하이에크(Friedrich Hayek 1899~1992)는 <화폐의탈국가화>(1976)에서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주체들이 화폐를 발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은 <화폐경제학>(1994)서문에서 <미래의화폐는어떤형태를가지게될것인가?>라며, <과연컴퓨터의바이트(bite)일까?>라고 자문자답했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유효수요창출의 케인즈식처방의 뉴딜정책적흐름이 금태환중지선언으로 전환을 맞이하게 되던 시점, 레이건정권의 신보수주의경제정책에 주요바탕이 됐다. 그의 통화주의는 은행과 정부의 개입을 최소로 한다고 하지만 그를 위해 등장한것이 연준의 금리정책이다. 볼커연준의장은 물가안정을 위해 고금리정책을 실시했다. 이런 주요학자들이 모두 미래의 새로운 화폐를 주목하고 새로운 금융질서를 언급한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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